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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1987년 6·10항쟁 도화선' 인천 5·3민주항쟁

김희연
김희연 기자 khy@kyeongin.com
입력 2024-05-02 20:29 수정 2024-05-02 20:39

전국에 번진 '그날의 외침'… 역사에 꺼지지않는 들불로


1986년 민주헌법·노동3권 요구… 학생·노동자들 자발적 나서
군사정권 무리한 탄압 이어져… 작년 37년만에 국가가 인정
기념사업회법개정 통과 불구 광역시중 유일하게 기념관 없어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민주화 집중 조명 노력" 市와 협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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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의 옛 시민회관 사거리. 유난히 화창하고 더웠던 날씨에도 이곳에는 학생과 노동자 5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1만여 명의 진압경찰에게 격렬하게 맞서며 군부독재 퇴진, 민주헌법 쟁취, 노동3권 보장을 외쳤다.

이들의 외침이 바로 1987년 일어난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 '인천 5·3민주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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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민주화를 바라는 인천시민들의 열망

1980년대는 인천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이뤘던 시기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를 군사정권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과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산발적으로 거리 투쟁을 하던 시민들이 군부독재를 막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고자 하나로 응집한 결과가 바로 인천 5·3민주항쟁이다. 이는 특정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닌, 학생과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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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인천 5·3민주항쟁을 시작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은 인천 거리 곳곳에서 집회를 이어갔고, 이는 군사정권이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민주화 단체를 소탕하는 발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무리한 탄압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1987년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날 역시 인천에서는 학생과 노동자 1만5천여 명이 부평역과 부평시장 일대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등 '6·10 인천시민대회'가 열렸다. 인천 5·3민주항쟁이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도 이러한 관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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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3일 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서 일어난 '인천 5·3민주항쟁' 당시 모습.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제공

■ 37년 만에 국가가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으로


그동안 지역에서는 인천 5·3민주항쟁의 의미를 알리고, 이에 맞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2020년 6월 인천지역 국회의원 11명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고, 인천시의회도 그해 12월 '인천 5·3민주항쟁 법적 지위 확립을 위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힘을 보탰다.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관련 단체도 인천 5·3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알리려는 각종 사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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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성당 입구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시작된 현장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제공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해 7월, 인천 5·3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7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인천 5·3민주항쟁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이 뼈대다. 개정 전에는 2·28민주운동, 3·8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만 민주화운동 관련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았다. 관련법 개정으로 마침내 인천 5·3민주항쟁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천 5·3민주항쟁의 법적 지위 확보는 벌써부터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동안 인천 5·3민주항쟁 기념주간이나 계승대회 등 이날을 기억하는 행사는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시민단체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 열리는 '제38회 인천 5·3민주항쟁 계승대회'에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축사는 물론, 공로자 표창장 수여식도 예정되는 등 인천 5·3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일이 인천의 공식 행사가 되는 분위기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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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성당 입구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시작된 현장임을 알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2024.5.2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 남은 과제는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

이제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인천민주화운동센터 등 관련 단체의 마지막 숙원사업은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이다. 이들은 인천 5·3민주항쟁과 6·10 인천시민대회 등 인천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알리려면 반드시 독립된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역시 중 기념 공간이 없는 곳은 아직 인천뿐이다. 마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으로 인천에 민주화운동 기념 공간 조성을 위한 국비 확보 등 근거도 마련됐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는 인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당시의 기록과 유물 등을 보존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인천 5·3민주항쟁 기념주간을 매년 운영하며 각종 사진전이나 토론회를 열고, 주안1동 성당 등 인천에 남은 민주화운동 장소에 동판을 제작해 설치하며 더 많은 시민이 함께 역사를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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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옛 시민회관 사거리 쉼터에 이곳이 '인천 5·3민주항쟁'이 일어났던 장소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2024.5.2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앞으로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이 사료들을 더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하고, 인천 민주화 현장을 직접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도 계승 노력에 동참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경종 인천민주화운동센터장은 "관련법을 개정하고자 노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인천시민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인천 5·3민주항쟁의 의미와 정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나가자는 목표에서였다"며 "현재 신축 또는 리모델링 등 기념 공간 건립 방향에 대해 인천시와 협의 중으로, 인천의 민주화 역사를 집중 조명할 수 있는 독립된 기념관이 조성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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