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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아고라]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능사인가?

입력 2024-05-06 19:26

'교권 추락' 과도한 입시경쟁
사회환경 변화로 인한 복합문제
조례 부족분 수정·보완하면 돼
'학생·교사 갈라치기 대책 아닌
공존 여건 조성' 주장 귀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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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
최근 충청남도의회에 이어 서울시의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이 조례는 2012년 1월26일 시울시민의 뜻으로 제정됐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학생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폐지를 하게 되었을까?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공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경상남도의 경우처럼 제정을 시도하다가 종교단체와 보수적인 학부모단체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9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즉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명료하게 결정을 내렸다.

이 내용을 보고 있자니 미국에서 1964년 제정된 민권법(Civil Right Act)이 연상된다. 이 법은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소수 종교와 여성을 차별하는 주요한 것들을 불법화시킨 미국 민권 법제화의 기념비적 법안 중의 하나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흑인들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1954년 그 유명한 '브라운 대 위원회 소송'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공교육 장면에서 그 당시 당연시되었던 흑백 인종 분리교육을 종식시키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매우 격렬하게 반대하였고 흑백 간의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혼란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 이후 새롭게 당선된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에 서명함으로써 공교육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별교육을 철폐하도록 하였다.

우리의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보면 교육에서의 차별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준거를 담고 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의 자유, 소지품 검사 금지, 휴대폰 사용 자유 등 사생활의 자유 보장, 양심·종교의 자유 보장, 집회의 자유 및 학생 표현의 자유 보장,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설치 등 학생인권침해 구제' 등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을 기억해 보면 비정상적인 체벌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도를 넘은 체벌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그 시절, 누구도 인권, 기본권 등을 언급하지도 못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칼을 차고 수업을 하던 교사, 운동장에 일렬로 세워서 군대 사열하듯 하던 아침조례, 학도호국단을 결성해서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강요했던 경험들이 학교를 교육의 공간이 아닌 군사훈련의 공간으로 규정했었다. 요즘 어떤 부모가 그 시절과 같이 자녀가 학교에서 체벌을 받고 차별을 받는 것을 원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울시의회와 충청남도의회의 다수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교권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유와 함께, 특정 집단의 왜곡되고 과장된 논리에 따라 학생인권조례를 잇달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를 마치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나누면서, 학생과 교사의 편을 가르고 있다. 오늘날 교권의 추락은 과도한 입시경쟁과 교육의 상품화,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 생겨나는 복합적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수정 보완하면 된다. '학생과 교사에게 필요한 지원은 편가르기식의 왜곡된 갈라치기 대책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의 조성입니다!'라고 발표하는 교육감의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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