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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기계'가 아닌 '사람'을 향한 유아교육

입력 2024-05-07 19:58

유아까지 거센 디지털 교육 열풍
3~4세 하루평균 184분 기기 노출
언어·정서발달 부정적 영향 보고
각국 미성년 디지털 규제 움직임
자유로운 놀이 통해 연대·우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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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평생, 목수로 살아온 59세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질환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동자를 위한 질병수당, 구직수당, 실업급여 등의 복지정책은 그에게 유명무실하다. 질병수당은 그가 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담당자에 의해 거절당했고, 디지털화되어 있는 관공서의 복잡한 절차는 실업급여 신청조차 어렵게 만든다. 구청에서 제안한 구직수당은 일 할 수 없는 그가 구직 활동을 증명해야 하니 수당 지급 기준을 맞출 수 없다. 전화 상담을 위해 2시간에 가까운 통화 연결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와 분투하는 그 앞에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종일관 앵무새처럼 매뉴얼을 되뇌거나 몇 분차로 신청을 거부하는, 사람 혹은 기계를 보여준다. 선진적 정책과 디지털 시스템은 있지만, 이를 사용하고 활용해야 할 '사람'에 대한 고민이 배제된 일상을 영화는 고스란히 그려냈다.

정부는 2022년 7월 첨단산업 인재양성을 포함한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2023년 AI 보조교사 기능이 탑재된 디지털 교과서 플랫폼 도입추진을 발표했다. 반도체, 디지털 등 첨단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은 증가하고 관련 제재는 완화되며 초중고뿐 아니라 유아교육 분야에서도 디지털 교육 열풍은 거세다. 교사의 디지털매체활용 능력이 강조될뿐 아니라 유아에게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디지털 관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유아교육에서 디지털 관련 교육은 고등교육과는 달리 기술적 접근보다는 사회정서발달을 위한 보조도구로 강조된다. 영유아의 자유로운 놀이를 통한 감각교육 및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유아교육에서 기술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교육', '디지털 놀이' 등과 같은 용어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개발된 개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영아의 29.9%가 생후 24개월 이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만 3~4세 아동의 TV, 스마트폰, 테블릿 PC, 컴퓨터 등 미디어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184분에 달한다. 영유아의 디지털 기기 노출의 위해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연구가 보고됐다. 디지털 기기 노출 시간과 빈도가 높을수록 영유아의 언어발달 및 사회정서발달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뇌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인지발달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뿐 아니라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간뇌와 대뇌변연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올바른 디지털 기기의 사용 및 디지털 중독을 막기 위한 디지털 교육이 필요하다는 모순적 주장 또한 디지털교육의 목적으로 언급된다.



반면 세계 각국에서는 미성년자 디지털 규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교육은 기술 시장에서 아이들을 일종의 '상품'으로 취급하며 이익 중심의 기술 산업 전략의 일환으로 아이를 '이용'하는 경향성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프랑스에서는 3세 미만의 영유아는 디지털 기기 노출 가능성을 없애자는 제안이 등장했고, 스웨덴은 2017년부터 유치원 디지털 기기 사용 의무화 정책을 2023년 전면 백지화했다. 핀란드는 지난해부터 초중학교에서 종이책, 연필, 노트를 다시 사용토록 하고 디지털 교과서는 고등학교부터 사용토록 정책을 변경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미래사회에 대한 준비는 더 어린 시기부터 디지털 교육을 경험토록 하거나 올바른 디지털 사용을 위한 영유아 디지털 교육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삶을, 특히 더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공존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철학과 사유를 기르는데 있다.

영유아교육만큼은 디지털 세계가 아닌 자유로운 놀이를 통한 연대와 우애의 경험을 자연과 공동체 속에서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지, 0~5세 교육만큼은 사회적 변화와 시대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사람과 관계를 경험토록 하면 어떨지, 여전히 사람은 배제된 채 기술과 이를 통한 자본의 증식만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영유아 디지털 관련 소식이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된 유아교육계 안에서 질문하게 된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살릴 수 있는 건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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