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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국민음식'의 불안한 미래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05-08 19:58 수정 2024-05-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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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대형 김 생산업체들은 판매가를 10~30% 가량 올렸고, 지난달 마른김 도매가격은 1년전 보다 80% 급등해 속(100장)당 처음으로 1만원을 넘겼단다. 덩달아 김밥 가격도 오르고 있다. 김값 고공행진은 수출이 늘어 재고가 감소한 탓이다. 지난해 김 수출액이 7억9천만 달러로 한국은 세계 최대 김 수출국이다. 김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자 김과 김밥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생산량 증가에 비해 수출량 증가가 압도적이라 국내 유통물량이 부족하니 가격 폭등은 당연하다. 한류의 역풍이다.

어느 나라나 공동체의 정서적 유대를 상징하는 국민음식이 있다. 김도 그렇다. 산업화 시대의 소풍 도시락은 김밥이었다. 빈부와 계층의 격차로 속재료는 달랐지만 김 한장으로 둘둘 말면 '김밥'으로 평등해졌다. 조리법이 단순한 김은 김치와 함께 부자나 가난한 자의 밥상에서 평등한 맛을 구현하는 반찬이었다.

김 파동이 일자 정부는 할당관세 0% 품목에 김을 포함시켰다. 최대 김 생산국은 중국이다. 중국산 김이 시장에 풀린다. 물가는 잡을지 몰라도 국민 반찬으로 지켜 온 국민적 연대는 깨진다. 지난해 김치 수출은 4만4천여t, 1억5천561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다. 하지만 수입량이 28만6천여t, 1억6천357만6천달러다. 전량 중국산이다.

김치 종주국이 세계 최대 김치 수입국이 된 건 소비 격차 때문이다. 경제력에 따라 값비싼 국내산 재료로 만든 국산 김치 소비층과 알몸 김치 파동을 겪은 중국산 김치 소비층으로 나뉜 것이다. 중국산 김이 수입되면 같은 현상이 벌어질 테다. 프랑스 국민에게 바게트를, 독일 국민에게 소시지를, 이탈리아 국민에게 파스타를 수입해 공급하면 국민이 봉기할 것이다. 민족 정체성의 상징인 국민음식을 함부로 수입품으로 대체하는 건 정권을 걸어야 할 일이다.



작은 국토의 기후 온난화 재해는 더욱 치명적이다. 사과 파동에서 보듯 토종 농수산물의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작황은 기후변동으로 해마다 널을 뛴다. 사과는 북한에서 수입해야 할 판이고, 배추·고추·마늘은 번갈아 김장 공포를 조성하고, 따뜻해지는 겨울 바다의 김 양식은 위태롭다.

국민음식이 차별의 상징이 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 그때그때 수입으로 대체하기 보다, 토종 종자를 키울 국내외 생산지를 확보하는 거시 정책이 절실하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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