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인터뷰…공감] 개교 50주년 맞은 야학 '용마루학교' 박미소 교장

백효은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입력 2024-05-28 21:01 수정 2024-05-28 21:04

"배움에 마침표 없어… 늦깎이 위해 꺼지지 않을 야학의 불"


50~70대 연령층 다양… 공항서 영어 읽고 기뻐하던 어머니 기억남아
선배들 후원·기관 지원금 통해 운영… 마을공동체 사업 선정 '숨통'
6월부터 새 교장 취임 "시원섭섭… 학교 필요없어지는 순간 왔으면"


2024052901000300800029311
개교 50주년을 맞은 '야학' 용마루학교의 박미소 교장이 "50년 전 인하대 봉사동아리에서 시작된 용마루학교는 지금까지 인하대 학생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며 "인천 지역의 많은 분들이 야학에서 공부해 배움의 꿈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1974년부터 한 해도 쉬지 않고 50년 동안 한결같이 문을 연 '야학'이 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용마루학교'다. 이 야학이 더 특별한 이유는 인하대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용마루'가 운영하고 있어서다.

칠판과 책걸상이 놓인 작은 교실 2곳과 교무실을 둔 용마루학교는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했던 어르신들의 배움의 한(恨)을 풀어주는 곳이다. '배움에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는 걸 학교의 운영 목표로 삼고 있다.

용마루학교 50대 교장인 박미소(22·경영학과 21학번)씨는 "50년 전 인하대 봉사동아리에서 시작된 용마루학교는 지금까지 인하대 학생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며 "검정고시 교과수업뿐만 아니라 과학실험, 만들기 활동 등 특별활동을 하고, 매달 한 차례 학급회의도 열어 어르신들의 학교 생활과 배움을 도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6시부터 9시40분까지 두 과목씩 이뤄진다. 물론 수업료는 없다. 이곳에선 인하대 재학생 15명이 국어, 수학, 사회 등 검정고시 과목을 맡아 늦깎이 학생들은 가르치고 있다. 전기공학과, 물리학과, 행정학과, 사학과 등 대학생들의 전공도 다양하다. 이들은 교장, 진반(고등반)·선반(중등반) 담임교사, 행정 담당 등 각자 역할이 나뉘어있다.

용마루학교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온라인 수업, 학습지 배부 등의 방법으로 문을 닫지 않았다. 배움의 의지가 큰 어르신 등 늦깎이 학생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 때인 2021년부터 용마루학교에 몸담은 박씨는 "어르신 등에게 방정식이나 인수분해 등을 알려드리자니 처음엔 엄두가 안 났다"며 "어떤 것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몇 번을 반복해야 할지 등 동아리 부원들이 모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단 부딪혀 보면서 방법을 찾아 나갔다는 박씨는 "어르신들이 공부할 학습지에는 글씨를 크게 쓰고, 메모할 공간과 여백도 넓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반복해서 차근차근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못다 한 배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50년간 이 학교를 거쳐간 어르신들은 400여명에 달한다. 연령대도 50~70대로 다양하다. 박씨도 이곳에서 수학, 도덕 등 교과를 담당하면서 여러 학생들을 만났다.

"공항에서 청소 일을 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박씨는 "한글도 잘 읽지 못했던 분이 이곳에서 중등학력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영어를 처음 배웠는데 공항 곳곳에 있는 영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됐다며 밝게 웃으시던 얼굴이 떠오른다"며 해맑게 웃었다.

또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 혼자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많이 위축됐었다고 말하던 한 분이 용마루학교에 와서 마음 한구석에 있던 배움에 대한 짐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뿌듯했다"고도 했다.

2024052901000300800029315

지난 17일 열린 28회 졸업식에서 올해 검정고시에 응시한 8명의 어르신들이 졸업장을 받았다. 비록 검정고시에 전원 합격하진 못했지만 1년 동안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한 만학도들에겐 큰 격려가 된 선물이었다.

용마루학교는 매년 6월 입학식을 열고 이듬해 5월에 졸업식을 진행하는 1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이는 매해 열리는 검정고시(4월과 8월)에 맞춰 정해진 것이다.

박씨는 "졸업식에서 한 어르신이 '나처럼 나이 많은 학생들이 같은 것을 열 번 스무 번을 물어봐도 매번 차근차근 알려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씨는 "용마루학교가 문을 연 초기에는 당시 선배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운영이 됐다고 한다"며 "2010년 처음으로 인천시교육청의 비정규 야학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 평생교육진흥원 공모사업 지원금과 교직원공제회 기부금까지 받아 숨통이 조금 트였다"고 했다.

개교 50주년 맞은 야학 '용마루학교' 26회 박미소 교장
작년 6월부터 야학 '용마루학교' 50대 교장을 맡은 인하대 경영학과 21학번 박미소 씨.

용마루학교에서 활동했던 선배들은 박씨 등 후배들에게 여전히 든든한 후원자다. 박씨는 "여러 기관의 지원금과 선배들의 후원금을 더해 교실의 월세, 교재비, 학교 운영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용마루학교가 지난 2021년 이곳으로 이사할 때에도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박씨는 "공간이 많이 비좁아 한 강의실에 간이 벽을 설치해 중등반과 고등반을 나눠 수업을 했다가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며 "선배들이 후원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이사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용마루학교는 지난 4월 미추홀구청의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박씨는 "올해부터 이 사업으로 특별활동 시간에 전문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진행할 수도 있고, 주안1동 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해 다양한 체험활동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지역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야학을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에도 학교 운영비는 아직도 빠듯하다. 한겨울 히터를 들여놓는 일에도 고민이 컸다고 한다.

박씨는 "조금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씩 시설 보수를 하고 있다"며 "한정된 예산으로 체험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구매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고, 퇴근하자마자 저녁식사도 하지 못하고 곧바로 오는 분들을 위한 간식과 커피 등도 우리 사비로 충당할 때가 있다"고 했다.

용마루학교는 오는 8월 검정고시와 내년 시험을 대비해 10월까지 신입생을 받고 있다. 박씨는 "운영비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 많은 분들이 야학에서 공부해 배움의 꿈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오는 6월부터는 박씨에 이어 용마루학교 51대 교장이 새로 취임한다. 앞으로는 한발 물러서 후배들의 활동을 지켜볼 예정인 박씨는 "용마루학교를 떠나는 것이 시원섭섭하다"면서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후배 부원들과 연습 수업을 하는 등 아쉬울 틈도 없이 바쁘다"고 했다.

개교 50주년 맞은 야학 '용마루학교' 26회 박미소 교장

끝으로 박씨는 용마루학교가 앞으로 나아갈 50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50년 뒤에는 용마루학교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배움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분들이 이곳에서 꿈을 찾아가다 보면 그런 분들이 점차 줄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학교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한 명의 학생이라도 용마루학교를 찾아준다면 인하대 학생들이 도울 겁니다."

글/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박미소 교장은?

2002년 출생으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21학번에 재학 중이다. 신입생이던 2021학년도부터 용마루학교에서 수학, 도덕 등 교과목 강의를 담당했고, 2023년 6월부터 50대 교장을 맡아 용마루학교 운영을 이끌어 왔다. 용마루학교는 인하대 봉사동아리가 1974년 문을 연 야학으로 50년간 이곳을 졸업한 어르신들은 400여명에 달한다.

2024052901000300800029314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