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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 유일 ‘아트북페어’ 포문 연 슬로보트 북극서점 대표

유진주
유진주 기자 yoopearl@kyeongin.com
입력 2024-06-11 21:16 수정 2024-06-12 10:37

"왠지 들어가고픈 '책방'… 존재만으로 독서를 설득한다"


친구와 기타 연습하려던 곳… 독립서점 변신
지자체 도움·문화공간 활용하며 8년째 생존
부평구·區 문화재단에게 '북마켓' 지원 요청
'북페어' 기획 제안 답신… 현재 市주최 행사

공감인터뷰 북극서점 김순지씨10
슬로보트(44·예명) 북극서점 대표는 “책방은 연령과 취향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며 “동네 책방이 곳곳에 있어야 사람들이 길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살 기회가 생긴다. 그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책이 가진 위로의 깊이는 정말 남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인천 유일의 아트북페어가 성황리에 열렸다. 전국의 독립서점, 출판사, 작가 160개 팀이 선보인 독립출판물을 맘껏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 바로 ‘2024 인천아트북페어(IABF)’다.


올해 5회째를 맞은 인천아트북페어에서는 독립서점·출판사·작가들의 창작물을 전시·판매하는 아트북 마켓과 더불어 인문학 강연과 다채로운 공연·전시가 열렸다. 인천아트북페어를 구성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한 사람으로부터 기획됐다. 슬로보트(44·예명) 북극서점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북극서점은 인천시 부평구 굴포천역 인근에 위치한 독립서점이다. 슬로보트는 ‘자유롭게 살자’는 신조로 2016년 북극서점의 문을 열고 8년째 ‘생존’하고 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관대로 살고 있다는 슬로보트. 그녀의 삶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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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에서 작가와 가수, 책방지기 그리고 문화 기획자까지


슬로보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책’은 슬로보트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줬다. 책은 매번 슬로보트를 새로운 곳에 데려다줬고, 성장시켰다. “책이 가진 위로의 깊이는 남다르다”는 게 슬로보트의 경험이다. 책은 그렇게 그의 인생에 자리잡았고, 작가의 꿈을 키우게 했다.

슬로보트는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발을 들였고 13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2016년 퇴직하고 꿈을 좇았다. ‘슬로보트(slowboat)’라는 필명으로 독립출판물(책)을 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같은 해 10곡의 포크송을 담은 앨범 ‘섬광’도 발매했다.



생각지 못한 친구 제안이 독립서점의 문을 연 계기가 됐다.

“그 해에 초단편 소설을 쓰며 혼자 놀다가 3년 정도 여행하면서 마음껏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복직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친구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하는 공간이 있다며, 둘이 기타 연습이라도 하면서 같이 놀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 전화를 오전 11시쯤 받고, 오후 2시에 바로 계약을 했어요(웃음). 이후 여기서 무엇을 할까 하다 독립서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북극에서는 불씨를 아주 소중히 여기며 지킨다. 슬로보트는 책을 불씨삼아 의지한다는 의미로 북극서점이라는 상호를 만들었다. 슬로보트와 친구가 생각했던 ‘북극서점 유통기한’은 1년. 독립서점의 특성상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공감인터뷰 북극서점 김순지씨14

마침 이듬해 동업자였던 친구가 어렵게 임신을 하며 북극서점을 떠났다. 퇴직금을 소진한 슬로보트의 통장잔고는 75만원. 북극서점은 그렇게 끝나는 듯 했지만 새로운 길이 열렸다.


“저희는 북극서점을 저희의 놀이터라 생각하고 돈을 벌 목적 없이 자유롭게 운영했어요. 종종 플리마켓(벼룩시장)도 열었는데, 마지막으로 큰 규모로 좋아하는 작가님들 모시고 플리마켓을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 인천엔 제대로 된 북 마켓이 없기도 했고요. 테이블과 의자같은 걸 지원받으려고 지자체와 문화재단들에 무턱대고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다가 부평구문화재단으로부터 축제를 열어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게 인천아트북페어의 시작이 됐습니다.”

그렇게 슬로보트는 문화기획자로서 2018년 부평구문화재단과 공동 주관으로 아트북페어인 휘파람 마켓을 열었다. 당시 행사는 여성·이주민 단체, 독립서점, 독립출판·일러스트·핸드메이드 작가 등 80여개 팀이 참여하며 성황리에 진행됐다. 북극서점은 이 행사를 계기로 지난 2020년부터 인천시가 주최하는 ‘인천아트북페어’를 매년 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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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인천아트북페어 행사장 전경.

■독립서점의 존재 이유


인천아트북페어를 전담하고 있음에도 북극서점은 여전히 아등바등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슬로보트는 매년 북극서점이 망하지 않는 걸 계획으로 삼는다고 했다.

북극서점이 8년째 살아남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지자체 지원이라고 한다. 부평구는 동네 서점들을 대상으로 ‘도서관 납품’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구립 도서관과 학교가 도서 구매 시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도록 한 것이다.

독립서점이 오래 유지되는 데에는 책방지기 개인기도 필요하다. 슬로보트는 북극서점을 책방 외에도 작은 미술관과 플리마켓 등을 갖춘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슬로보트는 책방지기와 작가,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곳곳에서 에세이 집필, 북 큐레이션 등을 주제로 강의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저희 서점은 꾸준히 독립출판 수업을 해왔고, 다른 서점들 역시 전시나 북토크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서점 주인 특성에 따라 그 서점은 지역에서 크거나 작은 문화의 산실이 돼요. 책방이 장사가 잘 안 되는 건 책은 굳이 사야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정말 많이 바꾸거든요. 책방은 동네에 있으면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은 공간 아닌가요? 책방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독서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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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 자아실현…인생관을 논하다

이른바 ‘부캐’(부가 캐릭터)이자 필명인 슬로보트는 ‘느리게 항해하는 배’라는 의미를 지닌다. 슬로보트 본연의 성격은 ‘패스트(fast)보트’이지만, 인생에 있어선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슬로보트는 좋은 점수, 좋은 직장, 좋은 대학, 결혼 등 통상적으로 성공이라 여겨지는 길을 벗어나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찾고 있다고 했다.

슬로보트는 지난 2021년 ‘고르고르 인생관’을 출간했다. 책은 고양이 우체부 ‘고르고르’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에게 26가지 인생관이 녹아 있는 편지를 전하는 이야기로 구성됐다. 슬로보트는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삶을 채우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슬로보트의 인생관은 ‘사랑’ ‘자유’ ‘자아실현’. 이 모든 인생관을 이루고 사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을 느낀다며 슬로보트는 웃었다.

“내가 어떤 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고 인생을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다른 거 같아요. 자신만의 북극성이 뭔지를 찾아가보면 의외로 괜찮아요. 힘든 점도 있지만 돈이 다는 아니라는 확신이 저에겐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뭘 도전하고 싶은지를 알고 이 꿈을 키워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서점이고 책입니다.”

글/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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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보트는?


▲2016년 <섬광> 필름사진집, 단편소설집 독립출판
▲2016년 슬로보트 1집 정규앨범 ‘섬광’ 발매
▲2017년 <각자의 해변> 에세이집 독립출판
▲2018년 <인천 아트북페어 휘파람마켓> 주관 및 기획
▲2018년 <송도 아트북페어> 주관 및 기획
▲2020~2024년 <인천 아트북페어> 주관 및 기획
▲2021년 <고르고르 인생관> 출판
▲2022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 출판
▲2023년 에세이집 <순면과 벌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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