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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38년 인천시향 생활 마침표 찍는 바이올리니스트 정난희

박경호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입력 2024-06-25 20:59 수정 2024-06-25 21:14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눈물 왈칵… 동료들과 울린 감동의 헌정곡


은퇴 공연 뒤 긴장풀려 지독한 감기로 병치레… 이달 말 정년 퇴임
부당한 일에 먼저 목소리낸 '왕언니'이자 주도하던 '분위기 메이커'
소년범 바이올린 강습 등 계획 "여유롭고 의미있는 나날 보내고파"


정난희

1966년 창단한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이 아트센터인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초연(初演)한 지난 5월 17일. 이날은 1986년 인천시향에 입단한 제1바이올린 정난희(60) 상임단원의 시향 은퇴 연주이기도 했다. 특히 80분에 달하는 긴 연주시간의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정난희 단원은 이 초연작에서 인천시향에서 38년간 쌓은 경륜을 모두 쏟았다고 한다. 그렇게 큰 산을 오르는 듯한 연주가 끝난 직후,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 속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병욱 인천시향 예술감독이 평소와 다르게 마이크를 잡았다. 이병욱 예술감독은 은퇴 연주를 마친 정난희 단원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소회를 물었다. 그리고 인천시향은 슈만의 '헌정'(Widmung)을 연주해 정난희 단원에게 헌정했다.

정난희 단원의 인천시향 마지막 연주가 애초 계획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 아닌 난생 처음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과 함께 연주한 '헌정'이 된 사연이다. 그 감동의 순간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천시향 역사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정난희 단원 이야기가 곧 시향의 역사일 것이다.

그의 소회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마지막 공연 한 달 후인 지난 21일에야 만날 수 있었다. 공연 직후 긴장이 풀린 탓인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지독한 감기로 병치레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은 정난희 단원은 인천시향에서 '왕언니'로 통했던 에너지 넘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이달 말 정년 퇴임한다.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심하게 감기를 앓은 적은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참 건강하게 인천시향 생활을 했는데 말이죠. 시향에서 마지막 공연인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 되풀이하는 주법)가 굉장히 많아 연주자에겐 상당히 힘든 연주이긴 하죠. 마지막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웃음)"

동료들과 슈만의 '헌정'을 연주했을 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인천시향이 정년 퇴직자의 마지막 공연에서 '헌정'을 연주하기 시작한 건 2018년 이병욱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나서부터다. 정난희 단원은 다양한 분위기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이병욱 예술감독과 호흡이 참 잘 맞았다고 했다.

"마지막 7~8년은 우리 딸뻘인 젊은 연주자, 38년 인천시향에서 활동한 이래 최연소 악장, 젊은 지휘자와 함께하면서 좋은 기운을 팍팍 받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우리 딸이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이기도 해서 정말 아들딸 같은 동료들이에요. 인천시향이 젊어지고 실력도 크게 발전하고 있는 시기에 멋진 정년을 맞이했습니다."

공감인터뷰 인천시향 38년 바이올리니스트 은퇴하는 정난희 단원11111

1964년생 정난희 단원은 인천 신흥초등학교, 남인천여자중학교, 박문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서울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족 모두 인천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부친은 인천시향 창단 멤버이자 인천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하며 인천예총 회장까지 지낸 첼리스트 정무남(1941~2023) 선생이다.

정난희 단원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첼로를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바이올린과 만났다. 비교적 바이올린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역사가 깊은 난파전국음악콩쿠르에서 1976년(8회), 1977년(9회), 1979년(11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서울대 음대 출신 아버지와 동문이 됐다.

"제 학창시절엔 예원중(현 예원학교)과 서울예고, 선화예중과 선화예고 정도만 있었어요. 충분히 예고에 진학할 순 있었지만, 부모님 뜻에 따라 박문여고로 진학했어요. 음악을 계속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새벽마다 연주 연습을 하고 등교하곤 했죠. 당시 서울대 음대는 지금과는 달리 실기 점수 절반, 학력 절반으로 평가해서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었어요."

인천 햇볕이 좋아서인지 까맣게 탄 얼굴로 교복 치마에 바이올린 활을 켜기 편하도록 신축성 좋은 하얀 티셔츠를 입고 갔던 대학 실기시험 대기실에서 서울 지역 예고 학생들은 말끔한 차림에 구경도 못했던 고데기로 머리카락을 말고 있었다고 한다. 정난희 단원은 "그때 촌놈 티 팍팍 냈어요"라고 했지만, 당당하게 당시 박문여고 사상 처음으로 서울대 음대 합격증을 따냈다.

인천시향엔 대학 졸업을 앞둔 1986년 초 입단했다. 지금 인천시향 단원 공모 오디션은 몇몇 곡을 미리 정해 연주하게 했지만, 정난희 단원이 입단할 당시는 오디션 당일 초견 악보를 주고 연주하게 했다. 그의 기억엔 10대 1 정도 경쟁률이었는데, 초견 악보로 오디션을 치르니 다들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인천시향을 택한 건 '한국 교향악의 선구자'로 불린 인천시향 제2대 상임지휘자 운파 임원식(1919~2002) 선생 때문이었다. 고려교향악단(현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거친 임원식 선생은 1984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인천시향 상임지휘자를 맡아 시향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인천시향 입단 때는 수봉문화회관 2층이 시향 연습실이었어요. 지금이야 지하 연습실이지만, 그때 햇빛이 내리쬐는 날엔 햇빛을 그대로 받으면서 연습했고, 나무로 둘러싸인 푸른 풍경을 보며 연습하곤 했죠. 지금은 굉장히 프로다운 모습이라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편안했던 분위기로 기억해요. 임원식 선생님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도 그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분이셨어요."

정난희 단원은 400회 넘는 정기 공연에 기획 연주나 찾아가는 공연까지 포함하면 5천회 넘는 공연을 인천시향에서 소화했다.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0년 11월 임원식 지휘자와 함께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소련 산하 국가들로 찾아간 해외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당시 동구권 국가 해외 공연에서 버스 차창 밖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배급받는 풍경을 봤는데, 예로부터 문화적으로 워낙 깊이가 있는 국가들인지라 공연장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첸 주오황(임기 2006~2010년) 상임지휘자 때 발트 3국으로 떠났던 연주회도 그 나라들의 기후를 비롯해 잊히지 않는 추억입니다."

정난희 단원이 꼽은 인천시향의 강점은 20~5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단원이 어우러지는 조화 그리고 시대를 막론하고 어떠한 레퍼토리도 선보일 수 있는 안정감이다. 현재의 인천시향처럼 전통과 젊음이 공존하는 교향악단은 국내에서 손꼽힌다고 강조한다.

"교향악단은 예민한 음악가들이 많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 내부 갈등이 심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천시향은 그러한 갈등이 없어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있어서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서로 이해하고 체계가 잡혔다고나 할까요.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은 분위기죠. 실은 음악가들은 주도적으로 나서거나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성격이 많아 부당한 일이 있어도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데, 그럴 땐 제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누군가 제가 은퇴하면서 방패막이가 없어진 것 같다고도 했어요."

'분위기 메이커', 요즘 말로 '왕언니' 등이 인천시향 단원들이 보는 정난희 단원이다. 그가 떠나면서 아쉬워하는 단원이 많은 이유다. 정난희 단원은 "젊은 시절엔 조금 교만하기도 했던 것 같다"면서도 "이젠 건강하게 단원 생활을 할 수 있던 것에,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회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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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교향악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역의 노(老) 연주자에 비하면, 공무원 신분인 공립교향악단 단원 특성상 비교적 이른 나이의 은퇴다. 바꿔 말하면 음악가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이다.

정난희 단원은 구치소 등에서 소년범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활동, 교도소 라디오에서 음악을 선곡하고 해설하는 활동 등을 시작할 계획이다.

"나이가 드니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더 좋아지네요. 현대 작곡가들은 음의 나열이 많은데, 고전주의 작곡가들은 음이 많지 않으면서도 거기서 끌어내는 감동이 있다고 새삼 깨닫습니다. 인간이 작곡한 게 아닌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치열했던 과거와는 달리 여유로우면서도 의미가 있는 그런 일들을 앞으로 하고 싶습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바이올리니스트 정난희는…

▲1964년 서울 출생
▲1976년 인천신흥초 졸업
▲1979년 남인천여중 졸업
▲1982년 박문여고 졸업
▲1986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 졸업
▲1990년 미국 텍사스주 Roundtop Music Camp 수료
▲1986~2024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현 한국사법교육원 교수
▲현 휘란앙상블 단원

■ 주요 연주 활동

▲1987년 대만, 홍콩, 싱가포르 초청 공연
▲1990년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순회 공연
▲2006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초청 공연
▲2009년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일본 도쿄 공연
▲2010년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 초청 공연
▲ 2010년 발트 3국 중 라트비아 '리가 페스티벌' 개막 공연
▲ 2010년 리투아니아 '빌뉴스 페스티벌' 폐막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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