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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인터뷰…공감] 국내 첫 '요트 단독 세계일주'… 못말리는 탐험가 김승진 선장

김환기·김우성
김환기·김우성 기자 wskim@kyeongin.com
입력 2024-06-04 20:44 수정 2024-06-09 10:36

 


남극 근방 케이프혼 4만2천㎞ 항해… "동경하던 바다, 인생에 입항한 순간"

 

요동치는 가슴따라 40대 후반 5년 된 중고요트 구매
충남 당진서 출발해 209일 여정… 세계서도 드물어
"요트 건조시장 400억달러… 韓산업 성장 일조 목표"


일생 딱 한 번의 경험이었다고 했다. 달이 사라진 그믐날 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바람이 멎으며 요트가 멈췄다.


수개월씩 항해하면서도 좀처럼 겪지 못하는 완벽한 무풍이었다. 밤바다는 조금의 너울도 없이 반듯했고, 밤하늘엔 구름 한 점 걸쳐 있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가 먹색으로 맞닿은 적막한 그곳으로 별이 쏟아져 움직였다. 우주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믐날이어야 하고 바람이 멈춰야 하고 구름은 없어야 한다는 조건에, 결정적으로 그 바다에 가 있어야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기에 다시 눈에 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그는 아련하게 미소 지었다.

그토록 동경하던 바다를 가슴 속에 들이게 된 탐험가 김승진(62) 선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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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들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로 요트 단독 세계일주에 성공한 김 선장이 '특별한 바다'와 처음 마주한 건 고교 수학여행 때다.



충북 청주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해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고속도로가 없어 미시령과 대관령, 진부령 등을 구불구불 넘어야 동해에 도달하던 시절, 그가 탄 버스는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선장은 "날씨가 너무 좋은 상태에서 산맥 사이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데, 진하고 아름다운 수평선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봤다"며 "반 친구들은 버스 안에서 신 나게 노래하고 떠들고 했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고 돌이켰다.

벅찬 기억을 안고 대학생이 되어 똑같은 길로 다시 찾아간 바다는 작아 보였다. 김 선장은 이미 탐험가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미대생이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묘하게 잠수라든지 바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생겨났다"고 회상했다. '대학연합잠수회' 모집글을 발견하고 고민 없이 입회한 그는 스스로 표현으로 미친 듯이 바다에 다녔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싣고 가서 제주도에 두세 달씩 머물거나 울릉도에도 숱하게 찾아갔다. 전국을 돌며 만나는 타 학교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교육을 해줬다.

김 선장이 입회할 때만 해도 7개 대학이 소속됐던 대학연합잠수회는 1988년 그가 회장을 맡아 저변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34개 대학의 연합체로 성장했다. 과거 김 선장과 함께 활동하거나 김 선장으로부터 배웠던 이들이 현재 한국 스킨스쿠버업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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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 김 선장의 고난도 탐험은 대학 2학년 때인 1986년 여름방학에 시작됐다. 군부대 안에 위치한 북한강 발원지에서 출발해 여의도 한강까지 내려오는 350㎞ 종단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도랑처럼 흐르는 물을 걷다가 무릎 이상 높이로 물이 차면 헤엄을 치는 식으로 하루 8~10시간씩 이동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모험이벤트였다.

그로부터 불과 3일 뒤 김 선장은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강 원류에서 니가타현 바다까지 헤엄쳐 이동했다. 1990년에는 중국에서 가장 긴 양쯔강을 탐사했는데, 원류가 산에서 시작한다는 걸 듣고 히말라야 탕굴라봉을 등정하기도 했다.

김 선장은 "어느 날 일본 아타미라는 곳에서 파도가 압도적으로 솟구치는 걸 보게 됐는데 그게 무섭지가 않고 거대한 파도 너머 원경의 바다가 인상적으로 들어오더라"며 "내가 장래에는 저 바다를 넘나드는 인생을 살겠구나 하는 예감이 강하게 왔었다"고 떠올렸다.

김 선장은 한때 방송일을 했다. 일본에서 영상을 공부한 뒤 후지TV에서 일하다 1995년 귀국해 독립 다큐멘터리PD로 활동했다. 후지TV에 재직할 당시에도 그는 산악 취재나 바다 취재를 우선 배정해 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았을 만큼 모험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도전 지구탐험대', '환경스페셜' 등 자연환경 관련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김 선장은 200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머물고 있었다. 정원도 넓고 수영장도 있는 집에 살면서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얼마 안 가 그는 북한과 중국 접경의 탈북민 동행취재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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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김 선장은 세계 최연소 무기항 무원조 단독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시라이 코지로의 자서전 '7개의 바다를 건너서'를 읽었다. 다시 가슴이 요동쳤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그는 5년 된 중고요트를 구매했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바다가 인생 전체로 '입항'하는 순간이었다. 김 선장은 이 배로 먼저 크로아티아에서 한국까지 9개월간 항해했다.

이후 김 선장은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 약 4만2천㎞를 바람과 물결에만 의지해 홀로 항해했다. 2ℓ짜리 생수 450병과 쌀·육포·건조과일 등으로 끼니를 버텼다.

2014년 10월19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출항한 요트는 지구에서 제일 험난한 바닷길로 통하는 '케이프 혼'을 통과하고 209일 만에 돌아왔다. 국내에서 최초, 세계에서도 드문 성공담이었다.

그는 '요트원정대' 등 수많은 방송을 통해 익히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저서 '인생은 혼자 떠나는 모험이다'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고, 강의 요청도 쇄도한다. 그런 김 선장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김 선장은 "남극과 가까운 케이프 혼에서 유빙 사이사이를 통과하는데 작은 건 직경 60m, 큰 건 300m까지 관찰됐다"며 "부딪혔다가는 요트가 박살 날 상황인데 낮에는 안개 때문에 안 보이고 밤에는 어두워서 안 보이니까 잠도 잘 못 자고 2주 이상을 초긴장 상태로 항해한 적이 있다"고 했다.

태풍을 처음 접했을 때 일화도 흥미롭다. 김 선장은 "남중국해로 올라올 때 바람이 요트를 자를 것 같은 느낌에 공포감이 엄습했다"며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침몰까진 안 한다는 걸 알았고, 이게 무서운 게 아니고 '내가 빨리 갈 수 있게 해주는 친구이구나, 적이 아니라 동반자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태풍의 의미가 새롭게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공감인터뷰 김승진 선장3

김 선장은 국내 요트산업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는 "세계 조선산업 규모가 300억달러라 하는데 요트 건조시장은 400억달러다. 이 큰 시장을 우리가 놓치고 있다. 요트산업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면 요트 건조와 임대, 수리, 마리나 인프라, 용품 등 15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는 민족의 이동에도 이용되는 등 인류의 시원 같은 수단이라 그냥 취미라 하기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기회가 된다면 바다에 강한 우리 민족의 유전자를 확인시켜주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글/김환기·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김승진 선장은?

▲한국 최초 무기항·무원조 단독 요트 세계일주
▲(사)한국요트세계일주협회 협회장
▲다큐멘터리 연출가(현)
▲해양수산부 명예홍보대사(현)
▲IMOCA 월드챔피언십 스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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