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나루축제' 18일부터 3일간 신륵사 관광단지서 개최
지역농산물 직거래 '난전'·먹거리 부스
오곡 운반 재현 길놀이·풍물패 놀이마당
장작불로 구운 수십m 터널식 고구마통
남한강 풍경 주전부리 즐기는 강변주막
강 위에는 조선식 불꽃놀이 '낙화' 감상
대형 가마솥에 햅쌀·오곡 비빔밥 '추천'
20개국 3천명 외국관광객 유치계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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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앙관리가 여주목에 내려와 임금님께 진상을 올리는 스토리를 퍼포먼스로 구현한 퍼레이드. /여주시 제공 |
가을이다. 골목 사이로 부는 선뜩한 바람만으로도 싱숭생숭해지는 10월이건만 언제나 밖의 세상은 떠들썩하다.
이달엔 가을축제 소식이 가을꽃처럼 서로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하며 '가을 우체국 앞에서, 우연한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보고, 만지고, 맛보고, 즐기며 올 한 해 수고한 자신과 가족, 이웃들을 위로하며 또 한편의 애틋한 추억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나들이나 문화행사가 축제의 전부는 아니다. 올 가을에도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여주 신륵사 관광단지에서 열린다. 볼거리 많고 가볼 만한 축제를 넘어 축제 문화의 기원과 현재를 두루 더듬어 볼 수 있는 제 모습을 간직한 축제라는 점에서 더 뜻깊다.
■ 여주 '오곡마당'의 기원여주오곡나루축제에서 '여주'라는 지명을 빼면 맨 앞에 나오는 말이 '오곡'이다. 오곡은 다섯 가지 대표 곡식이자, 모든 곡물을 총칭한다. 여주가 오곡을 맨 앞에 내세운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70년대에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주 흔암리 야산 능선에서 집터가 발굴됐는데 이곳에서 기원전 8~6세기로 추정되는 다량의 탄화미와 보리, 조, 수수 같은 곡물이 출토됐다. 그 당시로는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에 농사를 지었음을 알게 해준 최초의 물증이었다.
이 역사성은 예로부터 미질이 좋아 진상미로 손꼽혔다는 여주 쌀의 명성과 전국 유일의 쌀산업특구로 지정된 여주에 자부심을 더했다.
농산물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려면 먹고 남는 농산물이 있어야 한다. 잉여농산물의 조건은 기후와 농법이다. 풍년이 들면 교환활동이 활발해져 어김없이 시장이 서고 축제가 벌어진다. 예인은 이처럼 농사를 짓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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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날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여주 점동면 흔암리 앞 강가에서 펼쳐졌던 여주 전통 민속놀이 쌍용거줄다리기. /여주시 제공 |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축제는 17세기 '소빙하기'를 지나야 가능하다. 소빙하기란 거창한 이름과 달리 평균기온이 2~3도 떨어진 데에 지나지 않지만, 농사는 초토화됐다. 100만명 이상이 굶어죽은 경신대기근도 이 시기의 일이다.
소빙하기가 지나고 점차 기온이 올라 작황이 좋아지면서 생산자들이 판매자임과 동시에 구매자로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향시가 되살아났다. 그런 점에서 지역 축제의 본질은 경제활동이다. 이 향시를 무대로 보부상들은 저마다의 세력을 키워갔고, 조선의 대표적인 예인집단인 남사당패 역시 전국의 향시를 떠돌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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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장작불 군고구마통 5개를 일렬 배치해 달콤한 여주 고구마를 무료로 직접 구워 먹는 여주오곡나루축제의 대형 퍼포먼스. /여주시 제공 |
여주오곡나루축제의 '오곡마당'은 여기에 기원한다. 오곡마당에는 여주에서 키운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난전이 서고, 여주농산물로 만든 먹거리 부스가 들어선다. 오곡을 운반하는 과정을 재현한 길놀이에 이어 풍물패의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수십m 길이의 터널식 고구마통에서 장작으로 구운 뜨거운 여주 고구마를 선 채로 호호 불며 먹는 맛은 올해도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 나루에서 즐기는 옛 정취'오곡'에 이은 두 번째 명칭은 '나루'다. 한강은 우리 민족의 오랜 삶의 터전이자 훌륭한 교통로였다. 한강의 뱃길을 통하면 서울에서 여주까지는 하룻길이다. 쌀을 비롯한 다양한 곡물과 서해를 통해 들어온 소금과 젓갈 같은 해산물의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게다가 여주는 장삿배와 세곡선의 중간 기착지였다. 조선시대 번창했던 4대 나루 중 서울의 광나루와 마포나루 두 곳을 뺀 나머지 두 곳이 여주의 조포나루와 이포나루라는 점은 그 무렵 여주 상권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한양도성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당일 입궐'이 가능한 지역이란 점 역시 사회문화적 의미가 크다. 수도권에서 국보와 보물 같은 문화재가 가장 많고, 조선왕조의 왕비 중에 20%가 넘는 8명이 여주 출신으로 여주가 세도가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입지적인 영향이 크다. 이 교류의 역사가 '나루마당'의 탄생 배경이다.
나루마당에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가족이 함께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는 강변주막이 설치되고, 지역 예술인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강 위에는 옛 나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람선인 황포돛배가 떠다니고, 선상 음악회에, 강 위에서 조선식 불꽃축제인 화려한 '낙화놀이'도 감상할 수 있다.
옛 조포나루 자리에서는 저잣거리를 재현해 도자기를 비롯한 지역 소상공인들의 장터와 지역에서 맛집으로 이름난 점포들이 총출동한 먹거리 장터도 운영된다. 이름하여 '잔치마당'이다.
여주쌀로 빚은 전통주 품평회에 축산단체의 무료시식회도 열린다. 빠트리지 말아야 할 코스는 대형 가마솥에 여주햅쌀과 오곡으로 지은 밥에 가늘게 썬 생고구마를 고명으로 얹은 비빔밥이다. 해마다 긴 줄을 설만큼 호응이 뜨겁다. 올해는 처음으로 쌀, 고구마, 땅콩, 가지 등 여주 특산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요리한 먹거리 3종 세트도 선보인다.
■ 여주, 세종의 도시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은 '여주'다. 이때 여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인문도시로서의 여주를 말한다.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이순열 이사장은 여주의 정신을 한글을 창조한 '세종'의 창의성과 애민정신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번 축제의 주제공연도 '세종, 여주 품에 잠들다'다.
여주는 세종의 외가인 동시에 세종이 잠들어 있는 영릉이 있다. K-컬처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에 여주를 알리는 데에는 한글을 창조한 세종대왕만큼 압도적인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올해는 한국관광공사와 협력해 20여 개국, 3천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한다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이들과 함께 할 다양한 한류 문화교류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 여주시는 방문객 30만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중 75%는 외지인이다. 여주시는 많은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관광인프라가 부족해 기대만큼 지역경제에 별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자성이 있다.
이에 여주시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오학동 남한강둔치 시민공원을 연내 완공해 이번 축제가 열리는 신륵사관광단지 일대를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해 여주의 랜드마크로 만들어 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주오곡나루축제는 이 야심 가득한 계획의 길라잡이인 셈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풍성한 가을축제를 한번쯤 체험하고 싶거나,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와 풍속의 멋스러움을 알려주고 싶다면 여주오곡나루축제가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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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붙을 붙여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연출하는 여주 가남읍 본두리 전통 낙화놀이. /여주시 제공 |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