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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위의 식사<301>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07 제0면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대결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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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박준호가 대답한다.



"인생은 엔조이 하기엔 너무 짧아."

왠지, 엔조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 토막 시간도 무료히 버리지 않고 베트남 여자와 대낮 정사를 벌이는 것이 엔조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박준호는 참는다.

"아등바등하다가 황혼기를 맞아 버린 주변 사람들을 나는 자주 봐 왔소. 그제야 왜 그리 살았나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거요. 내 말 뜻 알겠소?"

무하마드는 휘파람도 분다. 월트 휘트먼의 시에 랄프 월리엄스가 곡을 붙인 '밀밭 길 너머'다. 영국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경쾌한 곡이다. 박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흥얼흥얼 따라가다 말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아까, 그 일본 대사 말입니다"라며 말을 꺼낸다.

"아, 오카모토 씨."

"그 사람이 바로 통킹 만 석유 때문에 일본 정부가 특파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래요?"

그가 휘파람을 끊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연다.

"그렇다면 석유 탐사는 일본 쪽으로 넘어갈 공산이 큰 것 같소. 왜냐하면 오카모토, 그 사람 수완가란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오. 아부다비에서도 우리가 당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부다비에서 당했다니요?"

"사우디아라비아 뱅크와 조인트한 일본 기업한테 우리가 물을 먹었다는 거 아뇨. 그것도 우리 집 안방에서. …오카모토 그 사람 한 번 물었다 하면 절대로 놓지 않는 괴물이오."

"제가 알기에는 오카모토보다 텍사코의 데시가 더 위력적이라는 정보를 들었습니다만."

박준호의 말에 무하마드가 번쩍 고개를 쳐든다. 그가 말한다.

"형씨도 뭘 알긴 아는 모양이오만… 오카모토도 만만찮을 거요.…그래요, 아주 볼 만한 구경거리가 생긴 거 같구려."

커브 길이다. 완만하게 휘도는 커브 길을 돌아 나오자, 시야는 더 넓고 아득해진다. 하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그냥 넓은 호수가 태고의 정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새들이 수면 위로 낮게 날다가 갑자기 물속으로 곤두박질한다. 새를 먹은 수면이 이번에는 반대로 물고기를 토해 낸다. 간헐적으로 허옇게 튀어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가는 작은 물고기들의 춤사위….

그처럼 조용하던 호반을 모터 보트가 사납게 물살을 가르며 허옇게 지나간다. 세 명의 남자가 타고 있다. 소리도 시끄럽다. 이건 정적을 깨는 것이 아니라 호반과 정글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다. 무하마드는 여유롭다. 모터보트에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리고 고삐를 바꿔 잡으며 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이랴, 이랴!"

일종의 묘기다. 정식 용어로는 '피애프'다. 말의 보폭을 줄인다고 할까. 대신 앞다리가 더 많이 올라간다.

사열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 다다랐을 때 경의와 존경의 예(禮)로 일사불란하게 행사하는 왕궁 기마대의 묘기다.

"어떻소? 괜찮소?"

무하마드 씨가 자랑스럽게 묻는다.

"보기 좋은데요."

바로 그때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지나쳐 갔던 모터보트가 갑자기 튕겨져 내달아온다. 그것도 호반 가운데가 아니다. 무하마드와 박준호가 걷고 있는 물가 바로 옆이다. 아니, 절반은 물속에, 절반은 갈대 밭 위를, 마치 먹이를 찾는 새의 저공 비행처럼 휘몰아쳐 온다. 말이 동요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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