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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일보 뿌리둔 언론3社, 통합된 곳이 '경인일보'

김명래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13-10-24 제3면

<경기매일신문·연합신문·경기일보>

   
▲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가 23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대중일보 창간 송수안 경기매일 발행 '명맥'
통합 경기신문 편집국엔 3社인력 고루 배치
언론史에도 '경기신문' 대중일보 전신 기록
경인일보로 이름 바뀌었을 뿐 '뿌리는 하나'


1945년 10월 7일에 인천에서 창간한 대중일보는 인천·경기 언론의 출발점이었다. 언론사로서 시설, 장비, 자본,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껍데기 언론사'가 횡행하던 시절에 대중일보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신문사였다.

대중일보는 인천신보, 기호일보를 거쳐 경기매일신문(1960년 7월)으로 이름을 바꿨다. 비슷한 시기 인천 중구 사동에서 인천신문(1960년 8월)이 출범했다.

인천신문은 경기연합일보를 거쳐 연합신문(1970년 10월)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1966년에는 인천 신포동에서 경기일보가 창간했다.



이들 신문사의 자산은 대중일보였다. 대중일보 창간 주역의 한 명이었던 송수안은 경기매일신문 발행인으로 올랐다. 대중일보 기자로 시작한 김응태는 인천신문 편집국장을 거쳐 경기일보 부사장을 했다.

인천신문 초대 주필이었던 고일은 인천 언론계의 어른으로 통했다. 인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한 오광철은 인천신문, 경기일보를 거쳤다.

1973년 경기매일, 연합신문, 경기일보는 통합해 9월 1일 경기신문으로 출범했다. 경기신문의 초대 편집국장은 경기일보를 거쳤고, 인천 편집책임자는 경기매일신문 출신이었다.

기자들 인원수에서는 연합신문 출신이 다수였지만, 편집국 부서별로 보면 3개 신문사의 인력이 고루 배치됐다.

경기신문의 전신이 대중일보라는 건 언론사(史)에 기록돼 있다. 경기신문은 훗날 경인일보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인일보에는 경기매일, 연합신문, 경기일보의 뿌리가 포함돼 있다.

한 단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중일보가 경인일보의 원뿌리다. 1973~1988년, 일부가 '언론 암흑기'라고 부르던 시절에도 경기신문(경인일보) 기자들은 그 몸체를 이어왔다.

/김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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