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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서울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201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참가자들이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전 국민이 큰 슬픔에 빠졌다. 20일로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시계는 16일 오전에 멈춰버렸다.
차가운 바다 속에 갇힌 실종자들을 언제 구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바다 위를 맴도는 구조대의 모습만 나오는 똑같은 뉴스를 보는 시민의 입에서는 속절없이 한숨만 나온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은 승객을 버렸고 정부는 우왕좌왕 실종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비정한 유언비어마저 나돌아 실종자 가족의 가슴에 피멍을 들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도 큰 상처를 받았다.
전국의 축제는 잠정 중단됐고 직장인들의 회식도, 주말 나들이도 크게 줄었다.
◇ "남의 일이 아니다…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직장인 심모(41)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일하는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쯤 구조자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실시간 뉴스를 보지만 새로운 소식은 늘어나는 사망자 수밖에 없다.
심씨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하루빨리 구조 소식을 듣고 싶지만 정부의 대응을 보면 큰 기대는 못 할 것 같아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김정숙(66.여)씨는 요즘 아예 TV를 켜지 않는다.
"괜히 TV를 틀어봤자 뉴스에 시퍼런 바닷물밖에 안 보여 속상해서 TV를 보지 않는다"며 "자식들이 다 장성했지만 부모 마음은 똑같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한의원을 하는 윤모(43)씨는 다음 주에 병원 직원들과 하려던 회식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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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새벽 침몰 여객선 세월호 희생 학생의 장례식이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열려 희생자를 태운 운구차량이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과 함께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씨는 "다들 분위기가 웃으며 회식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회식을 미뤘다"며 "제발 반가운 소식이 좀 들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쪽에 직장이 있는 이모(42)씨는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먼저 빠져나왔다는 사실만해도 큰 충격이었다"며 "진도 현장을 방문했다가 조롱거리가 된 관료나 정치인들 행태도 우리 수준을 돌아보게 해 자괴감만 들 뿐이다"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회식이 취소되면서 종로의 음식점에도 단체 예약객이 줄었다.
종로의 한 오리고깃집 사장은 "회사 근처 건설회사 손님이 많은데 사고 이후 단체 예약이 많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한 정육식당 종업원은 "예약 취소는 아직 없지만 직장 회식을 위한 단체 예약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첫 주말에는 놀이공원과 고궁을 찾는 발길도 눈에 띄게 줄었다.
19일 오후 4시까지 용인 에버랜드 입장객은 3만여명으로 전주(4만5천여명)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날씨가 좋은 봄날에는 4만∼5만명은 들어온다"며 "여객선 침몰사고의 여파로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가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입장객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입장객은 2만5천명으로 전주 토요일(3만2천800명)보다 24% 감소했다.
코레일 관광열차도 단체 여행객이 자리를 빼는 바람에 운행이 줄줄이 취소됐다. 코레일에 따르면 16일 사고 이후 4∼5월 예정된 6건의 관광열차가 취소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관광열차 한 건 당 430명이 탈 수 있으니 단체 여행객이 많이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전 국민이 트라우마…기성세대들 책임감 느껴야"
전문가들은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참사의 상처로 마냥 아파 할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발휘해 처리해야 할 과제가 있고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를 명확히 직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뉴스에서는 연일 구조상황과 사태 수습에 대한 보도보다는 피해자의 안타까운 에피소드만 흘러나와 국민이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돼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지금은 일단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것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 국민들의 분노가 앞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금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심리적 희생양'을 찾고 있다"며 "온 국민이 같은 심리상태에 빠진 것을 '공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며, 분노나 트라우마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동체적인 집단의식으로 변화시켜 사고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언론이 참사의 모습을 너무 생생하게 보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선체가 가라앉는 것만 화면에 보여주지 말고 대책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국민이 정확한 정보를 접할 수 없으니 소문이 만들어지고, 국민도 안심하고 싶어 루머를 계속 돌리는 것"이라며 "정부의 대책이 너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충남 나사렛대 상담센터의 이해리 교수는 국민의 슬픔은 당연하며,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교수는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슬픔, 이런 상황이 벌어지도록 원인을 제공한 선사 등에 대한 분노, 구조 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드러난 자조와 무력감 등으로 전 국민이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지금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슬픔과 고통을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경쟁사회에 몰려 쫓기며 살던 아이들이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에 져 버린 데 대해 기성세대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이 슬픔을 쉽사리 잊어버리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