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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의 역사/민본의 나라 만든 정도전

김해규 기자 발행일 2015-06-30 제18면

‘백성이 섬김받는 조선’ 못다이룬 삼봉의 꿈

▲ 삼봉 정도전 사당 문헌사에서 내려다 본 진위면 은산리 일대. /한광중 제공
▲ 삼봉 정도전 사당 문헌사에서 내려다 본 진위면 은산리 일대. /한광중 제공
고려말 성리학적 이상으로 새왕조 설계
정적 이방원과 대립 ‘예견된 죽음’ 맞아
큰손자가 평택 은산리 정착 집성촌 형성


‘난세에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나라를 운영할 학자들이 길러지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혁명가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려 말은 난세(亂世)였습니다. 밖으로는 오랫동안 고려를 억압하고 수탈했던 원나라가 쇠퇴하고 중국의 주인이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안으로는 원나라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던 친원파 권문세족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원(元)에 공녀로 끌려갔다가 황후가 된 누이(기황후)를 등에 업고 갖은 횡포와 방자한 태도를 서슴지 않았던 기철, 물푸레나무 몽둥이로 백성들을 두들겨 패면서 땅을 빼앗았던 임견미같은 인물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재물로 권문세족들은 산과 강을 경계로 농장을 보유했습니다.



고려 말 국제정세가 크게 변하는 것을 깨달은 공민왕은 반원개혁정치를 폈습니다. 원나라의 강요로 낮아졌던 왕에 대한 칭호와 관료제도를 바로 잡고, 몽고어와 몽고풍습까지 금지시켰습니다. 신돈을 등용해서 불법적으로 수탈한 권문세족의 농장과 이에 딸린 노비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해방시키는 정책도 폈습니다.

원에게 빼앗긴 땅도 되찾았고, 친원파들도 내쫓았습니다. 변화와 개혁의 시기 새롭게 성장한 세력이 신진사대부입니다. 신진사대부는 본래 지방출신이었습니다. 신진사대부는 고려 후기에 들어온 성리학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리학은 철학적이면서도 언론과 학문을 기반으로 비판하며 토론하는 정치를 지향했습니다. 왕과 관료들에게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했으며 가문과 배경보다는 실력을 우선시했습니다.

삼봉 정도전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한 사람입니다. 그의 고향은 경북 봉화였습니다. 봉화에서 대대로 향리직을 수행했던 그의 집안은 아버지 정운경이 중앙관료로 진출하면서 개경으로 올라왔습니다. 고려 말 신진사대부는 성균관을 근거로 활동했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한 정도전도 이색을 스승으로, 정몽주, 권근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했습니다. 21세에는 관직에도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고려 말은 강직하고 올곧은 젊은 정치가가 뜻을 펴기에는 부패하고 너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정도전은 33세 되던 해 전라도 거평부곡에 유배되는 과정에서 역성혁명(易姓革命), 다시 말해서 새로운 나라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도전이 함경도의 이성계를 찾아간 것은 세상을 바꿀 힘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성계는 비록 함경도 출신이었지만 쌍성총관부 회복과 왜구격퇴에 큰 공을 세워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하고 있었습니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조준과 함께 과전법을 시행하여 경제권마저 장악해버렸습니다. 역성혁명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한 뒤에는 조선건국에 성공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사대부의 이상(理想)이 실현된 나라, 백성이 하늘처럼 섬김 받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왕도정치, 민본정치가 그것입니다.

건국 초기 헌법인 ‘조선경국전’을 보면 이 같은 이상이 담겼습니다. 한양도성 사대문에도, 궁궐의 현판에도, 그가 꿈꾸던 세상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의 이상은 강력한 전제왕권을 꿈꿨던 이성계의 5남 방원과 부딪쳤습니다. 결국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견된 죽음이었습니다.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일대는 봉화 정씨의 집성촌입니다. 이곳에 봉화정씨가 정착한 것은 정도전의 큰 손자 정래 때입니다. 그래서 봉화정씨의 종가(宗家), 삼봉 정도전의 사당 문헌사, 삼봉기념관과 삼봉집 목판, 그리고 민본의 나라를 꿈꾸었던 그의 이상이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김해규 평택 한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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