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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5]'우주전쟁'과 장르문학의 정치학

경인일보 발행일 2017-02-15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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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우주전쟁'(1898)은 영국을 혼꾸멍내주기 위한 소설이었다. 화성인의 침공이라는 전대미문의 상상력으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단순한 우주 전쟁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주전쟁'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분명하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전쟁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요, 박테리아 등 질병의 은유를 통해 유럽인들의 내면에 도사린 전염병(흑사병)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화재의 공포문학이었기 때문이다.

H. G. 웰스(1866~1946)는 '투명인간', '타임머신', '닥터 모로의 섬' 등 걸출한 화제작을 남긴 작가이자 점진적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다. 또 '세계문명소사'(1920) 같은 역사서를 집필한 저술가였다. 국내에서는 월북시인 오장환(1918~1951)이 가장 먼저 이를 '세계문화발달사'(1947)란 이름으로 번역, 출판한바 있다.

웰스의 베스트셀러 '우주전쟁'을 대중문화의 신화로 만든 인물은 기념비적 영화 '시민 케인'(1941)의 감독 오손 웰즈(1915~1985)였다. 1938년 라디오 방송국의 연출자였던 웰즈는 '우주전쟁'을 실제 상황 같은 방송드라마로 만들어 뉴저지주(州)를 집단적 공포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1944년 11월 14일 칠레 산티아고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웰즈를 벤치마킹, '우주전쟁'을 실감나는 방송극으로 만들어 내보내자 칠레 당국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실제로 군대를 동원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시 5년이 지난 1949년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한 방송국에서도 '우주전쟁'을 실감나는 라디오 속보 형식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국방부장관 역할을 맡은 배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담화문을 발표하더니 이어 사제 역을 맡은 배우는 신의 자비를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으며, 아나운서는 남성들의 자원입대와 주민대피를 호소하였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택(?)에 이를 실제 상황으로 착각한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산으로 대피했다. 심지어 군대가 출동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당황한 방송국에서 이것이 드라마임을 밝히자 격분한 피난민들이 폭도로 변해 그만 방송국이 불타고 직원들이 추락사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웰스는 '우주전쟁'을 통해서 세계 전역에서 약소국을 짓밟고 침략전쟁을 벌이던 제국주의 영국을 골탕 먹이기 위해 화성인들을 동원하여 런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또 영국독자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함께 침략 받는 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도록 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우주전쟁'(2005)도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런 '우주전쟁'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었다. '우주전쟁' 개봉 당시 역사적 맥락을 보면 스필버그의 제작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우주전쟁'은 반전(反戰)을 위한 반전(反轉)의 문학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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