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58]장르문학과 대중

경인일보 발행일 2017-03-08 제17면

2017020501000314100013951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가 왔다. 장르문학 · 대중문화 · 선거 · 촛불집회 등 현대사회의 중심에 대중이 우뚝하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대중의 반역'(1929)은 현대사회의 정치와 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대중에 대해 분석한 명저다.

전체주의 체제에 동원된 대중들과 창의적 고급문화예술을 위기에 빠뜨리고 소비대중문화에 탐닉하는 대중들의 출현에 착잡함과 공포를 느낀 가세트는 이를 '대중의 반역'으로 명명한다.

영국의 문화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레이몬드 윌리엄스(1921~1988)는 '문화와 사회'(1958)를 통해서 '대중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한 사람들을 대중으로 바라보는 경멸적인 관점만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선보이며 대중에 대한 기존의 귀족주의적 정의들과 결별한다.

대중은 'mass'나 'mob'으로 치환될 수 없는 열린 개념, 곧 'popular'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popular'는 '인기 있는', '대중적인', '통속적인'이란 뜻을 지닌 형용사로서 일종의 사회현상을 가리키는 것이지 고정불변의 실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mass의 번역어로 쓰인 대중이란 말은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니 등 출가자와 재가신자를 의미하는 불교의 사부대중(四部大衆)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중은 부정적으로 정의할 것도 아니며, 실체가 아닌 것도 아니고, 또 관점의 문제로 치환될 문제도 아니다. 대중은 현대인들에게 내재된 속성이며 '존재론적 양상'에 가깝다. 현실 속의 우리는 대중교통 이용자로, 관객으로, 관람자로, 고객으로, 독자로, 또는 집회 참가자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을 대중문학이라고도 하는데, 주류 문학담론에서 장르문학 독자는 당연히 낮은 취향을 지닌 '우중(愚衆)'일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르문학을 읽는 독자들이 어리석은 대중도 아니고, 장르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보다가 돌연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기도 하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독파하는 다양한 취향과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바로 독자(=대중)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국면이며, 양상이다. 또 광장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다.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 가타리가 제시한 'multitude' 곧 다중(多衆)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작금의 현실에 더 타당해 보인다.

저마다 독자적인 정체성과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층위의 문화를 즐기다가 문득 특정한 사안이 발생할 때 선택적으로 공동 행동에 나서기도 하는 대중이 바로 다중이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은 대중의 문학이자 다중의 문학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