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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한국교총 직선제 최초 여성 회장 인천교총 박승란 교장

김명래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17-03-08 제9면

"교사 권리 아닌 가르치는 권리, 그 교권을 지키겠습니다"

인터뷰 공감 박승란 신광초등학교 교장5
박승란 인천시 교원단체 총연합회 회장이 신광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가르치는 맛 나는 학교,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교총 가입 강요 교장에 맞서 탈퇴 '해야할 말 못참아'
이사 제의 받고 다시 인연… 교섭위원 활동 이어와
'현원 대장' 전산화 등 새로운 일보다 관행 철폐 앞장
현장 목소리 중요… 좋은 교육 환경 만드는 일 최선


인터뷰 공감 박승란 신광초등학교 교장10
국내 최대 규모의 교원 단체인 한국교직원총연합회(한국교총) 70년 역사에서 직선제로 선출한 첫 여성 회장이
인천에서 나왔다. 인천시교원단체총연합회(인천교총) 박승란 회장(인천신광초 교장)으로 지난 달 제14대 인천교총 회장에 취임해 활동 중이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박승란 회장이 뽑히기 전까지 17개 시·도교총에서 여성으로 회장에 오른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중앙대 설립자로 초대 총장을 지낸 임영신(1899~1977년) 박사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한국교총의 전신인 대한교육연합회 11~13대(1965~1972년) 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임 회장은 간선으로 선출됐다.

초·중등 교원 성비 불균형이 매년 심화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교원 단체인 시·도교총의 여성 리더가 70년 만에 나왔다는 사실은 교총 내부에서도아는 이가 많지 않다.



'최초의 여성 회장'이란 타이틀을 염두에 두고 지난 27일 오전 11시 인천신광초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박 회장은 "주변에 여자 선배님들 중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라면서도 "여자로서라기 보다 인천교총 활동을 오래 해왔고, 함께 활동한 분들의 권유도 있어 회장에 나섰다"고 말했다. 박승란 회장을 오랜 기간 지켜본 이들은 그녀를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박 회장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순간을 못 참는다"고 말했다. 14대 인천교총의 캐치프레이즈는 '선생님 곁에 교총'이다. 교권 보호·확립을 위해 실질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홍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박 회장은 1961년 경기도 시흥시 소하리, 지금의 광명시 KTX역 부근에서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 교사였던 부친의 '외벌이'로 꾸려지는 생계가 넉넉하지 않았지만, 1960년대에 딸을 유치원에 보낼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10대 시절 역사학자가 꿈이었지만 아버지 권유로 인천교대(현 경인교대)에 진학했다.

교대를 졸업하고 1982년 초임 교사가 됐을 때 아버지에게 들은 조언은 30여년 교사 생활의 나침반이 됐다.

"처음 교직을 시작할 때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교장·교감에게 인정받는 교사가 되기 보다, 동료와 학부모가 자녀를 맡기고 싶어하는 교사가 되라'고. 이 이야기를 2002년 인천대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 때 '장학론의 대가'인 이윤식 교수님께 들었어요. 이 교수님은 '좋은 교사상' 모델을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함께 하는 교사 중 가장 좋은 선생님을 꼽아봐라. 그 중에 내가 맡길 교사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 사람들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끄집어 내라'고. 저는 지금도 이런 교사상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회장을 설명하는 키워드의 하나는 '당당함'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 앞장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교총 탈퇴 사건'이었다. 박 회장은 두 번째 발령받은 인천석남초에서 교총 가입 강요 문제로 교장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자신이 교총 회원이었지만 학교 교무부장 등이 '무리수를 둬가며' 후배 교사들에게 교총 가입을 유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후배 교사를 두둔했다. 마침 교무실을 찾아온 교장에게 "설득을 해야지 강요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가 언쟁이 붙었다. 이 일로 박 회장은 교총에 탈퇴서를 냈다.

교직 경력 8~9년 차에 벌어진 일이다. 평교사가 공개된 자리에서 교장의 입장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도 드물지만, 1980년대 후반 당시에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하나의 '사건'이었다. 박 회장은 "후배교사가 '무조건 교총에 가입하라'는 말을 듣고 무척 부담스러워 해 '이건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말하고 행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회장은 '엄격하지만,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는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과 노는 일을 좋아해 초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걸스카우트 인천연맹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사로서 역량을 높이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교총과 다시 인연이 시작된 건 지난 2000년부터다.

"할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박 회장에게 '교총 이사' 제의가 들어와 수락했다. 교총 이사회에 참석했고, 정책위원이 됐다. 정책위 활동을 하며 인천의 교육 정책에 눈을 떴고, 이는 인천교총 교섭위원 활동까지 이어졌다.

박 회장이 교섭위원 활동을 하는 동안 인천교총은 '직장 어린이집 개설' 등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관행 철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중 '현원 대장'의 전산화를 이끈 일은 흥미롭다.

인터뷰 공감 박승란 신광초등학교 교장12
"교감이 되면 '현원 대장'을 작업하게 돼 있어요. 전체 직원들이 언제 들어와 무엇을 하고 언제 나갔는지를 기록하는데, 이것을 한자 수기(手記) 3부를 작성하는 거에요. 현원 대장 용지까지 지정돼 있었어요. 전산으로 입력하지 않고 왜 수기로 쓰느냐고 물어보는데, 모두 당연하게 써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대안을 얘기하지 않더라구요. 인천교총 교섭을 통해 현원 대장 전산 입력을 가능하게 했는데, 그게 작년의 일이에요."

박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인천신광초 교장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책상 옆 벽면의 한자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여일리불약제일해 생일사불약멸일사).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함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제거함만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한 가지 더 하는 것은 하고 있는 한 가지 수고를 더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칭기즈 칸의 책사(策士) 야율초재(耶律楚材)가 한 말이다.

10여년 전 인천용일초에서 교무부장 시절 책에서 얻은 글귀로, 그 이후 계속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있다고 했다.

"제가 욕심이 많아요. 그래도 가급적이면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보다, 불편한 것을 개선해 나가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게끔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칭기즈 칸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는 글도 몰랐지만 경청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요. 저 역시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사의 자존감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나오고,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곧 교권을 지키는 일"로 보고 "혼자보다는 조직이 교권을 강하게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천교총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회장 임기 3년간 남기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결국은 교권입니다. 교권이라는 게 선생님의 권리가 아니라 가르치는 권리예요. '가르치는 맛 나는 학교,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저도 학교 현장에서 어렸을 때 저항도 많이 했고, '아니다'라는 말도 많이 해봤어요. 나 혼자 교직에 있다가 점찍고 나가는 것도 좋지만, 교총이라는 조직에 들어왔고 조직의 수장으로서 우리 후배들이 좋은 교육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작은 기여라고 하고 싶습니다."

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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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란 회장은?


▲ 1961년 경기도 시흥시 소하리(현 광명시) 출생
▲ 1974년 인천부평서초 졸업
▲ 1977년 인천부평여중 졸업
▲ 1980년 인천여상 졸업
▲ 1982년 경인교대 졸업, 인천청천초 부임
▲ 2000년 인천교총 교섭위원(~2016년)
▲ 2008년 제11대 인천교총 부회장
▲ 2009년 교감 임용(인천능허대초)
▲ 2013년 인천교총 교섭위원장(~2016년)
▲ 2014년 제13대 인천교총 부회장
▲ 2015년 교장 임용(인천신광초)
▲ 2017년 제14대 인천교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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