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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설 수 없는 청년 '의존사회'·(1)드러그노마드 세대]弱해진 청춘, 藥에 빠지다

박연신
박연신 기자 julie@kyeongin.com
입력 2017-07-16 22:36 수정 2017-07-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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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고 카페인·에너지 음료 물처럼 마시고 피임약까지 불사
취준생 긴장 풀어주는 '베타블로커' 입소문·미용약 필수
경쟁사회 정신적-신체적 안정찾기… 중단땐 고통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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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의존'을 만들었다. 높아지는 실업률과 금수저·흙수저로 대변되는 신계급론 사이에서 청년들의 절망은 늘었고, 무언가에 기대야 하는 의존적인 삶을 가속화했다.

의존의 대상도 달라졌다. 예전엔 가족·친구가 실패와 외로움을 감싸 줄 불안탈출의 통로였다면 이제는 약물과 가상의 공간, 익명의 대상이 그들의 출구가 됐다. 경인일보는 청년들의 이같은 의존 현상을 사례별로 집중 점검해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려 한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전문가와 함께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의존사회
최근 들어 정신적 안정뿐 아니라 신체적 안정을 찾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20대가 늘어나고 있다. 16일 오후 수원 시내 한 도서관에서 취업준비생이 졸음을 쫓기위해 카페인 음료 등을 마시며 공부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성남에 사는 27세 취업준비생 신지숙(여)씨는 의약품 도움 없이 하루를 보내기 힘들 정도로 약물의존도가 높다. 그가 기대는 약물이 마약처럼 불법은 아니지만, 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마약 못지 않다.

취업 준비를 위해 밤새기를 밥 먹듯 하면서, 고카페인 음료는 물론 타우린이 다량 함유된 에너지 음료를 물처럼 마시고 있다. 수년간 이를 반복했기에 카페인 내성이 생긴 듯 이제 별 효과도 없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피임약도 수시로 복용한다. 시험 및 면접기간과 생리주기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미봉책이다. 얼마 전에는 취준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베타블로커'도 복용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혈압을 낮춰, 긴장감을 풀어준다는 효과 때문이다.

미용을 위한 약도 그에게는 필수다. 일명 '보톡스'라 하는 '보툴리눔' 주사와 콜라겐 성분 등의 '이너뷰티' 의약품인데, 턱이 갸름해지고 피부에도 생기가 돌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취업 지원서용 증명사진을 찍기 전이나 면접을 앞둔 상태에서는 필수적으로 피부과를 다닌다.

신씨는 "항상 몽롱한 정신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지만, 취업을 해 제대로 살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택했다"며 "나만 이러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태연히 말했다.

'약(弱)해진 청년들이 약(藥)에 빠졌다'.

경인일보는 이들을 새로운 신조어 '드러그노마드 (Drug+Nomad)'로 설명해 보려 한다. '약물에 의존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청년'을 뜻하는 이 말은 약 없이 못 사는 현 세대의 특징을 설명한다.

정신적 안정뿐 아니라 신체적 안정을 찾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경쟁사회 심화로 어릴 때부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의약적인 요소에 기대온 탓에 습관화되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약에 대한 의존 성향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 문제는 약물을 중단했을 때 느끼는 무기력감이나 심리적 불안 등 정신적인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대부터 60대 중 약물을 질병 치료가 아닌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였거나 권장량 또는 의사처방보다 많이 복용했다'고 응답한 이들 가운데 20대가 20.7%로 가장 높았다.

이들의 약물복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의사의 처방 없이, 소문과 인터넷에 의존해 자의적으로 복용한다는 점이다. 잠을 쫓기 위해, 긴장을 늦추기 위해 약물을 반복적으로 투입하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도 상당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며 "이 같은 사회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무분별하게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경쟁사회 속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청년들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대응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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