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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과 인천·(1)프롤로그]70년 미군기지도시의 성장과 상처

박경호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11-29 제1면

인천 부평미군기지 전경1
애증의 공간-주한미군의 가장 오래된 주둔기지인 인천 부평 미군기지(캠프마켓) 전경. 지금까지도 70년 넘게 부평 땅을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인천사람이 미군 경제에 의지해 살아왔지만, 미군이 인천에 남긴 상처 또한 깊게 기억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945년 해방직후부터 자리 잡아
거대한 군시설 지역경제 큰 영향
기지촌·범죄·환경오염등 문제도
평택 이전 앞두고 관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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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주한미군의 가장 오랜 주둔지다. 미군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인천항을 통해서 한반도에 진주해 북위 38도선 남쪽 지역을 접수했다.

그 직후 미군은 인천 부평에 있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일본군 군수공장(조병창)을 보급기지로 전환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한미군 군수지원사령부인 '애스컴(ASCOM·Army Support Command)'으로 확대했다. 지금까지도 70년 넘게 부평 땅을 차지하고 있는 44만㎡ 규모의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는 옛 애스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수도 서울에 인접한 데다가 항만까지 낀 인천은 지정학적으로 '미군기지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월미도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30년 넘게 미군이 주둔했다. 인천항에서는 애스컴과 연계한 미군전용부두가 30년 넘도록 운영됐다.



남구 용현동과 학익동에는 미군의 대규모 유류저장소가 있었고, 미군이 쓸 기름을 수송하는 '파이프'가 도심을 가로질렀다. 미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철도가 거미줄처럼 깔렸다. 인천의 진산(鎭山)이라 불리는 문학산 정상에도 산을 깎아 미군부대를 조성했다. 이 밖에도 인천 곳곳에 미군부대가 눌러앉았다.

수많은 인천사람이 미군기지에서 근무해 먹고살았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PX물자가 수많은 인천사람의 생계를 책임졌다. 미군을 상대로 한 사업을 기반 삼아 대기업으로 성장한 인천기업도 있다. 그만큼 '미군 경제'가 인천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하지만 미군이 인천에 남긴 상처 또한 깊다. 미군기지 주변에 조성된 기지촌, 기지촌에서 미군 병사를 상대한 여성들과 혼혈아 문제, 살인이나 강도를 비롯한 미군 범죄 등은 한국정부조차 손대기 어려운 문제였다.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유류 등으로 뒤범벅된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형으로 남았다.

주한미군이 인천에서 완전히 철수할 날이 멀지 않았다. 평택미군기지 조성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자 인천 도심에 유일하게 남은 미군기지인 캠프마켓의 평택 이전 시점도 내년 말께로 가닥이 잡혔다.

최근 환경부가 캠프마켓 내부 환경오염이 복합적이고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염 치유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가 한·미 간 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군이 오염시킨 해외 미군기지 땅을 스스로 책임진 적은 없지만, 인천 지역사회에선 미군의 '원인자 부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1949년 6월부터 한국전쟁까지 1년여 동안 잠시 철수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미군은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70년 넘게 인천에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무엇을 위해 인천에, 나아가 한국에 주둔하고 있을까.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미군이 주둔한 인천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감내한 희생은 무엇일까.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거나 차지했던 인천 땅에 애초 미군기지가 없었다면, 그 풍경은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오염된 캠프마켓 정화부담은 누구의 몫일까.

경인일보는 이 같은 질문을 품고 인천의 주한미군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희미해지는 주한미군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내년이면 인천의 품에 안길 부평미군기지 땅을 어떻게 맞을지, 어떻게 가꾸어 후대에 물려줄지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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