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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과 인천·(6)기지촌과 혼혈아]병사 유흥·향락의 해방구… 또다른 '위안부' 잉태하다

박경호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12-18 제1면

접대여성 '양공주' 1700여명 달해
정부, 성매매 묵인 '외화벌이' 이용
폭행·살해사건 등 범죄피해 빈번
미군과 혼혈아, 차별·입양 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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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주변 기지촌은 철저하게 미군 병사들의 '유흥과 향락'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그중에서도 인천 부평미군기지 맞은편의 기지촌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기지촌에는 영어 간판을 단 술집과 클럽이 넘쳐났고, 미군 병사를 상대하는 한국 여성들이 살았다.

미군 PX물품을 취급하는 양품점이나 미용실도 있었다. 기지촌은 수많은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미국 대중음악 전파 등 우리나라 문화에 끼친 영향도 컸다. 하지만 주한미군 병사들의 '해방구' 역할을 한 기지촌이 인천에 남긴 상처 또한 지워질 수 없는 역사다.

인천 부평에 있는 신촌(新村·부평3동 일대)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지촌이 형성된 지역이다. 미군이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주해 부평 일본군 조병창(군수공장)을 접수, 주한미군 보급수송본부로 활용하면서부터 미군기지 맞은편인 신촌에 미군 병사를 상대하는 한국인 여성들이 몰렸다. 이들은 '양공주'라 불렸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부평에 애스컴(ASCOM·주한미군 군수지원사령부)이 조성돼 도시 자체가 미군기지화하면서 기지촌은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부평역사박물관의 학술총서 '부평 신촌'에는 1950년대 말 부평에 미군 병사를 접대한 기지촌 여성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1천500명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부평 이외의 인천 지역에는 200명이 따로 있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부평 신촌에는 미군 병사가 출입하는 '클럽'이 20곳 넘게 성업했다. 이곳에서 미군 병사들은 술 마시고, 음악과 춤을 즐기고,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도 존재했다. 신촌 골목골목에 있는 기지촌 여성의 셋방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다.

지금도 부평 신촌 일대에는 부엌과 다락을 갖춘 단칸방 4~5개가 길게 늘어선 독특한 형태의 주택이 남아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셋집이다.

미군은 기지촌 여성들을 '위안부'로 취급했다. 한국정부는 1961년부터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면서도, 같은 해 '관광사업진흥법'을 제정해 기지촌 여성의 성매매를 사실상 묵인하고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 기지촌 여성이 미군에게 살해당하거나 다치는 사건도 빈번했다.

미군 병사와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차별문제도 심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혼혈아동은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해외로 입양되곤 했다.

'해외 입양인의 대부'라 불리는 인천 덕적도 출신 서재송(88) 할아버지처럼 1960년대부터 50년 넘게 덕적도, 동구 송현동, 부평구 부평동 등에서 혼혈아를 비롯한 고아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을 찾아주기 위해 애쓴 이도 있다.

인천 미군부대를 다룬 문학작품에는 양공주와 혼혈인 자녀가 단골로 등장한다. 소설가 오정희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9살 아이의 시선으로 쓴 단편 '중국인 거리'(1979) 속에선 월미도 미군부대 흑인병사를 상대하는 메기언니와 메기언니의 딸인 백인혼혈 제니가 인천차이나타운에 산다.

이원규가 1987년 발표한 단편소설 '겨울새'는 부평 기지촌 여성과 그의 혼혈인 아들이 주인공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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