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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재벌사·95]엘지-3 최정상 기업집단의 시작 '금성사'

이한구 기자 발행일 2019-02-19 제14면

최초 라디오·TV 빅히트… '전자제품은 금성'

텔레비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1959년 국내 최초로 국산 라디오 'A-501'을 개발했다.(사진 왼쪽) 또 1966년 8월 흑백 TV 'VD-191'을 최초로 생산했다. /LG전자 제공

윤욱현 중심 본격 사업 추진
첫 국산라디오 'A-501' 생산
'농촌 보내기 운동' 힘입어
한해동안 4억3천만원 매출
1966년 19인치 수상기 '대박'


락희화학이 국내 정상급의 재벌로 도약할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는 1958년 10월에 부산시 부전동 518에 금성사를 설립한 때문인데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56년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 윤욱현 기획부장은 "평소 전축을 좋아해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이 컸을 뿐 아니라 전자기기 관련 간행물들을 자주 읽었기 때문에 라디오를 생산해 보도록 구 사장에게 건의했다.

이 무렵 일본 통산성의 백서가 발표됐다.

그런데 그 백서에는 석유화학 또는 전자공업이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구 사장은 아직 국산라디오가 없는 점에 주목하면서 윤 부장에게 사업성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럭키40년사', P.1789)







>> 정상급 재벌 도약 계기


윤욱현을 중심으로 1958년 4월에 라디오, 플라스틱 잡화, 전기기기 부품, 유라이트(폴리카보네이트) 등을 생산하는 공장건설계획을 확정하고 기계 및 시설도입비로 8만5천195달러를 책정했다.

9월에는 서독의 라디오기술자인 헨케(H. W. Henke)를 2년 계약으로 고용하고 12월에는 기술요원 확보를 위해 공고 및 공대 졸업자들을 모집하여 생산체제를 갖췄다.

1959년에는 차관 및 은행융자 등 때문에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생산에 착수한 결과 그해 11월에는 국내 최초의 국산라디오인 A-501을 생산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산라디오에 대한 홍보부족과 외제라디오 때문에 금성사는 출발부터 존폐의 기로에 서야만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도약 계기가 초래됐다.

-금성사 고위관계자의 회고


"문 닫는 시기를 내달로 정하느냐 그 훗달로 정하느냐로 고민하던 때에 '농촌에 라디오 보내기운동'이 벌어졌다. 7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트랜지스터라디오 3대를 공보부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물론 금성사의 라디오였다. 이를 시발로 라디오 보내기운동 성금들이 속속 모이고 라디오 주문은 쏟아졌다. 주문받은 것을 소화하느라 밤을 낮 삼아 일하기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이종재, '재벌이력서', P.204)

>> 락희화학과 '쌍두마차'


1961년에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외제품 배격 운동'을 추진했는데 이를 홍보할 매체로 라디오를 정하고 '농촌에 라디오 보내기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계기로 금성사는 1962년 한 해 동안에 13만7천대를 팔아 4억3천1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전화기, 적산전력계 등의 생산은 물론 1964년 말부터는 동남아, 중남미 등에 수출하는 등 급신장했다.

한편 이 무렵부터 금성사는 TV 생산에 착수했는데 배경은 1961년 12월 31일자로 국영 KBS-TV가 국내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개시한 것이다. 1964년 8월에는 민영의 TBC-TV가 개국됐다.

정부는 1966년 12월에 전자제품 국산화를 통해 전자공업을 장차 수출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의 전자공업 진흥계획을 발표했다.

금성사는 1963년부터 TV 생산시설을 마련하고 1965년 9월에는 일본 히다찌(日立) 제작소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 1966년 8월에 국내 최초로 19인치 흑백 TV 수상기(모델명 VD-191)를 생산했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빅히트했다.

이때부터 '전자제품은 금성'이란 말이 소비자들 사이에 회자돼 금성사는 락희화학과 함께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하면서 LG그룹은 재계의 전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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