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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1)2월 29일생 伊 로시니]4년에 한번 나이 먹은 '천재형 작곡가'

김영준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9-03-08 제1면

10대부터 활동 '오텔로' 등 명성
역동적 선율로 베토벤 인기 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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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 로시니(1792~1868)는 2월과 3월 사이, 어느 쪽에도 끼이지 못하는 바람에 생일을 제대로 못 챙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2월 29일에 태어났다. 4년에 한 번밖에는 생일상을 받을 수 없었다.

일흔둘이 되었을 때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음악비평가인 한슬리크(1825~1904)가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좋다고 말하자 로시니는 "뭐, 놀랄 것도 없지 않소. 난 며칠 전에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었소"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생일로만 치면 나이가 4분의 1로 줄어드는 거였다. 로시니는 천재형 작곡가였다. 불과 12세 때 작곡한 '현을 위한 소나타'(전 6곡)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로시니는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쉽게 작곡하는 체질이었다. '데메트리오와 폴리비오', '탄크레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등은 10대에 작곡한 오페라들이다.

그 뒤로도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지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오텔로'가 대표적이다.

로시니는 37세였던 1829년에 그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의 파리 공연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오페라의 서곡은 콘서트에서 독자적으로 자주 연주되는데, 로시니의 음악성을 체감하기에 제격이다.

그는 자신의 39번째 오페라였던 '윌리엄 텔'을 끝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30여 년 동안 작곡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70세가 넘어 미사곡과 피아노 소품 등을 작곡했다.

로시니는 인기 순위에서 베토벤(1770~1827)을 압도했다. 청중은 진지한 베토벤의 음악보다는 역동적이면서도 밝은 선율을 선사하는 로시니에 더욱 열광했다.

낙천적인 성격이었으며 부(富)도 축적한 로시니였지만, 금요일과 13이란 숫자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고 한다. 13일의 금요일엔 침대에서 꼼짝도 안 할 정도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마침 1868년 11월 13일, 금요일이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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