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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인천·(32)]'광주학생운동' 동참 이두옥·신대성

김주엽 김주엽 기자 발행일 2019-10-24 제1면

'광주' 프레임에 항일 인정받지 못한 학생들

한국전쟁 이전에 행적 끊어진 탓
北에도 기록없어… 연구활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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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29년 11월 3일 전라도 땅 광주에서는 대규모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 중 하나로 꼽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다. 정부는 이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광주에서 기념식을 열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에서 5만5천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광주'라는 이름에 담긴 상징성 때문에 이들의 독립운동은 조명받지 못했다.

1930년 인천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이두옥(1911~1950), 신대성(1909~?) 등 16명의 학생은 동맹 휴학을 벌이고, 전교생에게 '광주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이자'고 참여를 독려했다.



이 사건으로 이두옥과 신대성은 학교를 떠나야 했지만, 독립운동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두옥은 3·1운동 11주년을 맞아 항일운동 정신을 고취하는 내용이 담긴 격문을 배포했다. 이후 신대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을 준비하다 한 차례 더 옥살이했다.

안타깝게도 인천지역에서는 이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두옥과 신대성이 해방 이후 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영향으로 '빨갱이' 올가미가 씌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두옥은 제주 4·3 사건에 연루돼 총살을 당했다. 신대성은 우익단체에 몰래 잠입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로는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두옥과 신대성은 좌익 활동을 벌였지만, 한국전쟁 이전에 행적이 끊겼기 때문에 북한에도 관련 기록이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남과 북 모두에게서 외면당했다. 이들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인천에서라도 이두옥과 신대성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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