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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22)]지상조업(上)

김민재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20-07-16 제12면

바퀴 내린 비행기 이끌어주는 '인터폰맨'… 멀리서 손흔드는 공항의 숨은 영웅

연중기획 인천공항 여객 지상조업 물품 보급1
지상조업 관계자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여객기에서 하역된 짐들을 '터그카(tug car)'를 이용해 입국장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탑승교' 정위치접현 확인뒤 기장 전달
후진 못하는 항공기 '토잉카' 견인 의존
자력출발 지점까지 '푸시백'후 수신호
"이따금 화답하는 승객 보면 보람 느껴"

도착 이후 내릴때 반대편 수하물 하역
신속히 '카고 달리' 옮긴후 입국장으로
KAL 자회사 KAS, 국내 점유율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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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의 긴 여정을 마친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바퀴를 내딛는 순간 땅에서는 다음 비행을 위한 숨 가쁜 '항공지상조업(aircraft ground handling)'이 시작된다.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하면 승객의 짐을 재빨리 내려 입국장으로 실어 날라야 하고, 다음 비행 일정에 맞춰 기내 청소와 방역, 화물 하역, 시트 교체, 급유·급수, 기내식 탑재 등 모든 작업을 일사불란하게 마쳐야 한다.
비행기가 땅에 바퀴를 붙이고 있는 동안 모든 것을 책임지는 지상조업은 공항을 움직이는 여러 톱니바퀴 가운데 없어선 안 될 핵심 분야다.



7월 7일 오후 4시 30분께 미국 댈러스 포트워스 공항에서 출발해 13시간 48분의 비행을 마친 대한항공 KE032 여객기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231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신호등처럼 생긴 시각주기유도시스템(VDGS) 안내에 따라 비행기가 정위치에 멈추자 지상 조업원이 바퀴에 고임목(chock)를 설치했다.

이 비행기는 보잉 787-9 기종인데 기종별로 앞바퀴가 닿는 지점이 다르다. 비행기 탑승구와 공항 게이트 탑승교(boarding bridge)의 문을 꼭 맞추기 위해서다.

이 지점에 정확하게 멈추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로 인터폰 맨 역할이다. 정위치를 확인한 인터폰맨이 조종석의 기장에게 완료 신호를 보내자 기장은 항공기 파킹 브레이크를 해제했다. 인천국제공항의 지상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비행기가 승객들의 하기(下機)를 위해 기체 왼쪽에 탑승교를 접현하자, 수하물을 내리기 위한 장비가 기체 오른쪽에 일제히 달라붙었다.

여객기의 경우 상부 공간(메인덱·main deck)에 승객용 좌석이 설치돼 있고 하부 공간(로어덱·lower deck)의 짐칸에 각종 화물과 승객들의 짐이 실린다. 지상조업은 비행기 로어덱의 짐을 최대한 빨리 내려 승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시작한다.

연중기획 인천공항 여객 지상조업 물품 보급
여객기 하부공간(로어덱·lower deck)에서 지상조업 관계자들이 장비를 이용해 짐을 내리고 있다.

로어덱에 실린 컨테이너와 팔레트(벌크화물)를 하역하기 위해서는 '로더(loader)'라는 장비가 투입된다. 로더는 작업대를 위아래로 움직여 화물을 탑재하거나 하역하는 장비다. 지상조업 근로자가 작업대에 올라타 로어덱의 문을 먼저 개방해야 하는데, 그 전에 유압 리치를 당겨서 기내와 바깥의 기압 차를 맞춰야 한다.

문을 연 후 가장 먼저 내리는 짐은 로어덱 꼬리 칸에 실린 중요 화물이다. 유모차, 휠체어, 동물 등은 즉시 승객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내릴 수 있는 자리에 적재한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의 짐도 우선순위가 높다. 늦게 온 승객이 나중에 부친 짐도 가장 먼저 내리는데, 이는 가장 먼저 꺼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로어덱에 있는 짐에 대한 정보는 모두 전산에 입력돼 있어 지상조업 근로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승객 수하물 하역은 신속히 완료해야 한다.

로더로 내려진 짐은 무동력의 카고 달리(dolly·바퀴가 달린 판)로 옮겨진다. 그리고 터그카(tug car)에 카고 달리를 연결해 입국장으로 실어 나른다. 수하물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승객들이 기다리는 인도장으로 보내진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지상조업은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KAS)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지상조업사는 공항과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항공사와 계약을 맺고 일한다. 국내 항공사가 외국 공항에 착륙하면 현지 업체에 지상 조업을 맡긴다. KAS가 제2터미널에서 주로 일하는 이유는 고객사인 대한항공이 이 터미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속해 있는 항공 네트워크 '스카이팀' 소속 비행기도 제2터미널을 이용하는데 대부분 KAS의 고객사다. 지상조업사는 KAS 외에도 아시아나에어포트(AAP), 샤프에비에이션케이(SHARP) 등이 있다.

1968년 설립된 선두 주자 KAS는 지상조업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으며, 고객사도 50여 개에 달한다. 김포공항 시절만 하더라도 KAS가 독점적 지위를 가졌으나 최근에는 저비용항공사(LCC)도 지상조업 자회사를 만들어 일을 맡기고 있다.

KAS의 지상조업 컨트롤타워는 인천공항 G4 게이트 인근에 위치한 통제센터다. 여기서 고객사 비행기에 투입할 조업팀을 배정한다. 통제센터는 모두 7개의 데스크(desk)로 구성돼 화물기, 여객기, 수하물, 급유, 소산토잉 (Towing), 푸시백(push back), 항공기 운항 정보를 통제하고 모니터링한다.

KAS 강태현 운영통제팀장은 "화물과 수하물이 제대로 탑재됐는지와 늦게 온 승객, 항공기 지연 운항과 주기장 변경 등 각종 정보를 인천공항과 공유하고, 조업에 배정된 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하루 평균 여객기 400여 편, 화물기 50여 편을 조업했으나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70~80편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5~6명으로 구성한 조업팀은 조업 전 '레드캡 회의'를 열어 그날의 항공 정보와 게이트 위치, 수하물 정보 등을 파악한다. 레드캡은 책임조업장을 말하는데, 빨간 모자를 쓰고 현장을 총지휘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램프마스터'라고도 한다.

지상조업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비행기를 자력 출발 지점까지 옮기는 '푸시백'이다. 엔진의 추진력을 이용해 기체를 움직이는 비행기는 지상에서 후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잉카(towing car)'라 불리는 견인차가 시동이 꺼진 비행기를 뒤로 밀어줘야 한다. 입국 게이트에서 출국 게이트로 이동하거나 출국 게이트에서 활주로로 이동할 때 비행기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지점까지는 토잉카에 의존해야 한다.

연중기획 인천공항 여객 지상조업 항공기 이동 작업
지상조업 관계자들이 항공기를 자력 출발 지점까지 옮기는 '푸시백' 작업을 하고 있다. 항공기는 지상에서의 후진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토잉카(towing car)'라 불리는 견인차를 이용해 이동하게 된다.

게이트에 서 있는 비행기는 앞바퀴에 설치된 엄청난 압력의 유압 장치로 기체를 지탱한다. 비행기를 견인하려면 앞바퀴의 유압을 풀고, 토우바(tow bar)로 기체와 토잉카를 연결해야 한다.

앞바퀴 파킹 브레이크의 압력이 3천 psi(압력의 단위로 1제곱인치 면적에 가해지는 파운드 무게)에 달하기 때문에 유압을 풀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푸시백은 인터폰 맨이 통제한다. 인터폰 맨은 유도선을 따라 자력 출발 지점까지 푸시백을 할 수 있도록 기장, 관제탑과 소통해 토잉카 드라이버를 안내한다. 자력 출발 지점에 도착하면 비로소 비행기는 지상조업의 손을 떠난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창밖에서 손을 흔드는 이들이 바로 인터폰 맨과 토잉카 드라이버다.

KAS 정순재 여객사업부 램프여객1팀장은 "손을 흔드는 것은 기장에게 푸시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알리는 의미로, 승객들에겐 안심하고 여행을 하라는 인사"라며 "가끔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승객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푸시백을 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업무는 항공기에 기름을 채우는 급유다. 비행기는 JET-A1이라는 등유 계열의 항공유 사용하는데 어마어마한 양이 들어가다 보니 연료 비용이 항공기 운송 원가의 70%를 차지한다.

연중기획 인천공항 여객 지상조업 연료 주유 작업
한 지상조업 관계자가 여객기 날개에 위치한 주유구에 급유작업을 하고 있다.

비행기 주유구는 날개 아래에 있다. 유류 탱크와 연결된 공항의 지하 배관에서 기름을 끌어올려 항공기에 급유하는 방식이다.

미주나 유럽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에는 급유만 40분가량 걸린다. 가장 큰 비행기인 A380의 경우 인천에서 뉴욕까지 가려면 6만7천 갤런(25만3천ℓ)의 기름이 필요하다. 중형차 4천대에 넣을 수 있는 양이다. 현재 유가 기준으로 7천600만원 정도이나 유가가 폭락하기 전인 지난해만 해도 1억5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 비행을 위해 기내를 정리하는 '캐빈 조업'도 지상조업사 몫이다. 비행기 화장실의 오물 청소는 물론 깨끗한 물을 채워 넣는 보이지 않는 일도 하고 있다. 좌석별 시트 교체와 소독, 기내식 탑재 등도 있다.

항공기별로 다르지만, 장소 문제 때문에 탑승교에 직접 접현하지 못한 비행기에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램프버스도 지상조업사가 운행하고 있고, 승객들이 지상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 사용하는 계단이 달린 '스텝카'라는 차량도 운영한다. 겨울에는 제설·제빙 업무도 도맡아 한다.

지상조업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줄어 경영상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저비용항공사의 자회사 일부는 폐업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정부가 올해 4월 항공지상조업을 특별 고용 지원 업종으로 선정해 각종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만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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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S 램프여객1팀 조동현 선임 수석감독(수감)은 "요즘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행기가 선물처럼 느껴진다"며 위기에 놓인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31년 차 베테랑 지상조업 근무자인 조 수감은 "어렵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지상조업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온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승객들이 짐을 찾는 인도장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신속하게 일하는 게 우리 임무"라며 "야외 업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엔 추운 고된 작업이지만, 공항에는 없어선 안 될 업종이기 때문에 늘 보람을 느끼며 일한다"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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