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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택배기사가 알바 고용·택시 콜 골라잡는 '앱' 등장

이여진 이여진 기자 발행일 2021-05-21 제10면

지금까지 이런 일자리는 없었다… '이중 플랫폼' IT 혁신인가, 노동사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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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택배 성수기 기사들이 아파트별 알바 따로 구해
온라인서 노동자가 또 다시 고용하는 노동 형태

택시 '콜 배차 자동 클릭' 월 5~6만원 사제앱 등장
일 늘고 소득 줄어… 운영사 카카오 역대최고 실적

관련법은 아직 전통 플랫폼도 규제 못하는 실정
사용자 의무 외면… 법·제도가 포괄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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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이 진화하고 있다. 고정된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사업주와 고용주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전통적 노동의 개념이었다면, IT시대에는 플랫폼이 온라인에서 일자리를 중개하고 거래하는 '플랫폼 노동'이 보편화 됐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직접 일을 선택할 권리도, 근무시간을 결정할 권리도 없어 사실상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에 가깝지만 현행법에는 플랫폼 노동이 규정되지 않아 법적으론 자영업자(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특히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지난해 사망한 택배기사만 16명에 이르는 등 과노동이 만연하자 이들은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일을 대행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다. 이른바 '이중 플랫폼 노동'이다.

20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이란 '고객이나 일감을 구하기 위해 웹사이트나 스마트폰 앱 등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일자리'다.

플랫폼이 거래를 조율했다고 볼 수 없는 단순 구인구직앱 이용자와 전자상거래 종사자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는 국내에 22만명으로 추정된다.

플랫폼은 단순히 노동을 연결하고 거래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플랫폼 운영자가 만든 알고리즘에 의해 노동거래가 조율되고 이 과정에서 이윤이 발생하므로 플랫폼은 연결을 주된 활동으로 하는 사업이자 회사라는 것이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이다.

이 연구원이 지난해 플랫폼 노동자 9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의 자율성은 매우 낮았다.

응답자 41.7%는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노동자 본인이 아닌 플랫폼이라고 말했고, 23.5%는 본인이 일을 선택할 수 없고 플랫폼 사업주 등이 배정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30.9%는 근무시간 선택권이 없고 플랫폼이나 소속사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택배업계에는 '바통'이라는 이중 플랫폼 노동이 등장했다.

플랫폼을 통해 고용된 택배 기사들은 본인의 물량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바통'이라는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구한다.

주로 지상 배송이 까다로운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문앞 배달을 전담하는 형태이며, 비용은 건당 400~600원에 형성돼 있다. 당일 긴급 SOS의 경우 100원 정도가 더 비싸진다.

설명절 앞둔 택배 노동자 르포8
지난 설명절 연휴기간 폭증한 물량에 분주한 택배기사. /경인일보DB

지난 2018년 '다산신도시 택배대란' 때 서비스를 시작한 이 플랫폼은 전국에 22개 지사를 출점하고 지난해 택배배송중개서비스 특허까지 취득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택배기사들은 바통 아르바이트 100건을 맡겼을 때 하루 평균 월급(12만2천800원, 2020년 기준)의 절반가량을 바통 아르바이트 임금으로 쓰는 등 월급이 훨씬 줄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대형 택배사 4곳 1천8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업안전보건감독 및 업무여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기사 5명 중 1명은 '성수기에 대체인력을 고용한다'고 답했다.

택시업계에는 '플랫폼 위의 플랫폼'도 파생됐다.

'○클릭'이라는 앱은 한 달 6만원을 내면 희망 도착지, 비희망 도착지, 주행 가능 거리 등 특정 조건에 맞는 콜을 우선 배정받을 수 있고 배차까지 한 번에 완료된다.

'하이○○○'라는 앱은 가입비만 38만원에 달하는데 월 5만원에 장거리콜만 골라 받을 수 있고 업계 관계자가 직접 '꿀콜' 잡는 법 교육까지 해준다.

카카오T로 택시를 잡는 고객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콜 배정 알고리즘은 공개되지 않아 일부 기사들이 '콜 기근'에 계속 노출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들 앱은 공식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은 불법이어서 적발될 시 카카오T 기사 자격이 영원히 정지될 수도 있지만 많게는 한 달 20만~30만원을 더 벌 수 있는 유혹에 기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입하는 실정이다.

기사 C씨는 "요즘은 다들 카카오로 콜을 잡으니 한 달 9만9천원의 유료 멤버십 가입은 사실상 필수인데 그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해 추가로 5만원을 내고 불법 사제앱까지 받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플랫폼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소득은 올랐을까. 15년 경력의 택시기사 최기용(68)씨는 "일은 많아졌지만 소득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말한다.

7년 전 카카오가 들어오기 전 월 소득은 210만원 수준이었지만 카카오가 들어온 이후엔 수익성 좋은 콜이 유료 멤버십 기사에게 몰려 한 달 170만~180만원 선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하는 경우 평균 월소득은 238만4천원에 불과했다. 2020년 도시노동자 평균 월소득(264만5천원)의 90% 수준이다.

반면 카카오T 운영사는 연일 최고매출 기록을 경신하며 고속 성장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매출은 지난 2018년 533억7천만원, 2019년 973억원, 2020년 2천800억9천만원을 기록하는 등 2년 사이 5배 넘게 올랐다. 카카오 측은 최근 2021년 1분기엔 택시 매출이 전년 동분기에 비해 더욱 확대돼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이 갈수록 확대·진화되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관련법은 아직 전통 플랫폼조차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에서 플랫폼 종사자는 회사에 정식으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지난해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2개월 넘게 계류 중이다.

이 법은 플랫폼 사업주가 노무계약 체결·수수료 등이 명시된 서면 계약서를 종사자에게 제공할 의무를 규정하면서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노무의 배정·보수 등 수수료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종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하도록 했다.

업계는 관련법이 제때 정비되지 않을 경우 주요 플랫폼들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수수료를 기습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카카오택시
카카오T 기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하는 콜만 골라 배정해 주는 사제 애플리케이션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카카오T 택시 표시. 2021.5.20 /연합뉴스

앞서 지난 3월 카카오T는 기사가 원하는 목적지의 콜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부스터 서비스'가 포함된 유료 멤버십 가격을 월 5만원에서 9만9천원으로 2배가량 인상했다.

택배배송중개앱 '바통' 역시 현재는 수수료가 없지만 독점적 사업자로 올라설 경우 수수료를 올릴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플랫폼 사업주들은 종사자에게 업무지시를 하므로 실질적 사용자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전통적 형태가 아닌 중개형태로 노동력이 제공된다는 이유로 사용자의 의무를 외면해 왔다"며 "특히 최근엔 플랫폼의 다변화 추세가 빨라지는 만큼 법과 제도가 다양한 노동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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