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인터뷰…공감] 현존 최고 애관극장 다룬 다큐 '보는 것을 사랑한다' 윤기형 감독

김성호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21-12-01 제14면

"모르고 볼때는 오래된 극장, 알고 보면 보물 같은 극장"

공감 인터뷰 영화 애관극장 윤기형 감독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근대식 극장인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을 지난 28일 애관극장 앞에서 만났다. 윤기형 감독은 "애관극장은 보물"이라며 "보물을 지켜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으로 알려진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작은 영화'라고 낮춰 소개한다. 하지만 인천과 우리나라 공연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따져본다면 결코 작은 영화라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최초의 애관극장이 팔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후 애관극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모임이 결성되고, 인천시가 매입을 검토하고 나선 상황에 이르게 된 것도 윤 감독이 만들려던 이 작은 영화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애관극장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0월28일 전국 10여개 상영관에 걸린 러닝 타임 75분의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의 윤 감독을 최근 애관극장 앞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공감 인터뷰 영화 애관극장 윤기형 감독

개봉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그가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의 성적표가 궁금했다. 다른 상영관에서는 영화를 모두 내렸고 현재 애관극장 한 곳에서만 상영을 이어가고 있단다. 아직 1천명의 관객도 만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섭섭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영화잖아요. 너무 지역적인 소재이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보시기는 힘들겠다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예상대로 극장에 오질 않으시네요. 그래도 인천에서는 좀 봐주시지 않겠냐고 기대를 하긴 했는데, 관객의 판단이니까요."

그가 자신의 영화를 작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본업은 CF 감독이다.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CF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광고를 만들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답답한 마음이 남아있더군요. 광고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남의 이야기를, 남의 물건을, 그것도 아주 잘 해줘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제가 광고주를 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반대로 다큐멘터리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들으시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냥 시간 될 때 조금씩 찍었습니다. 제 본업에 방해 안 되는 선에서 편하게 찍었죠."

부업인 다큐멘터리 감독은 부담이 없었다. 영화를 꼭 완성해야 할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찍어 극장에 걸리기까지 했으니 자신은 행복하단다.

너무 지역적인 소재 '작은 영화' 많은 분이 보는 게 힘들겠다 예상
성장기 함께한 수많은 극장들 자연스레 꿈을 키워… 본업은 CF감독
유일무이한 극장 사라지게 놔두는 건 어리석은 일 '매입해 보존해야'


그가 다큐멘터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길고양이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고양이춤'이 첫 작품이다. 첫 작품치고는 꽤 큰 성공을 거뒀는데, 1만3천명의 관객이 그의 영화를 봤다. 일반 상업영화로 친다면 100만 관객 이상의 흥행을 거둔 셈이다.

005.jpg

그가 처음부터 애관극장만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던 건 아니었다.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인천의 모든 극장을 다 담아 지역의 극장사(史)를 담아내려고 욕심을 냈지만, 욕심을 덜어냈다. 욕심을 버리니 작품이 보였고, 마지막으로 인천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관객을 만나는 극장 상영까지 이뤄질 수 있었다.

"인터뷰를 모아놓고 가편집을 해보니, 너무 많은 극장이 등장하더군요. 극장 이름들만 소개해도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그림들은 다 쳐내고 애관극장과 비슷한 처지의 미림극장만 남겨서 작품을 만들었죠."

그가 성장하던 시기에 인천에는 수많은 극장이 있었다. 많은 극장들에서 영화를 접하며 자연스레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정작 영화 관련 학과에 진학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냥 입시 성적에 맞췄고 한문(漢文)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에 들어갔다. 당연히 대학 내내 공부는 뒷전이었다.

해군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내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제대와 동시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영화학과에 진학해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영화판에도 잠시 있었지만, 연봉 200만원으로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를 무작정 고생시킬 수 없어 CF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애관극장 다큐를 완성하고 주변 많은 이들로부터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받았단다.

특히 애관극장이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과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자신만의 '애관극장'이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친구의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전 세계 어떤 극장도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상영해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애관극장이 인천을 배우고자 하는 인천 시민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참고서라고 했다.

"저는 인천에 태어나서 자랐지만 애관극장 다큐를 찍으면서 비로소 인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천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게 됐습니다. 극장 하나를 공부하다 보니 어떻게 인천이라는 도시가 탄생했고, 어떻게 지나왔는가 알게 된 거죠. 모르고 볼 때는 그냥 오래되고 낡은 극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알고 보면 얼마나 보물 같은 극장인지 깨닫게 됩니다."

004.jpg

시장에 맡겨야 한다거나, 개인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등 애관극장 매입을 둘러싼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다.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애관극장에 대해선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유일무이한 극장인데 사라지도록 놔두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애관극장을 지키고자 수많은 이들이 모여 노력했습니다. 기자회견도 수차례 했습니다. 만약 애관극장에 애정을 가지고 매입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도 거리로 나서줄지 되묻고 싶습니다. 인천의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가 한 극장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애관극장 하나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요."

끝으로 그는 애관극장을 지켜달라는 자신의 바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애관극장은 보물입니다. 인천시장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꼭 애관극장을 매입해서 보존해 주길 바랍니다. 시민들이 사랑해 주셔서 애관극장이 지금까지 존속했던 겁니다. 앞으로 이 극장이 사라지지 않게 인천 시민들도 지금처럼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또 제 영화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윤기형 감독은?

▲ 1968년 인천 출생
▲ 송현초·인하부중·광성고·중앙대 졸업
▲ 광고회사 금강기획·하쿠호도제일 PD, 매스메스에이지 감독
▲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마켓 '마트키즈' 최우수상
▲ 2011년 다큐멘터리 '고양이춤' 전국 개봉
▲ 2011년 '당신이 가져야 할 단 한 장의 카드' 저술
▲ 2021년 10월28일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 전국 개봉


2021113001001141000056035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