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엔 공간 주고 주민엔 공감 주는… 십정동 '고운 채색'
정광훈 '갤러리 밀레' 대표. 2021.12.19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
밀레 1층은 레스토랑이고, 지하에 갤러리가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에는 독립된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를 가져야 제대로 된 전시라는 편견이 아직 남아있다. 작가들이 전시를 꺼리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간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정 대표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위스 바젤의 한 식당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준 높은 거장의 작품을 걸어두고 판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작가를 소개하는 책자도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선 이 같은 풍경이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용기를 얻었고, 그는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문턱을 확 낮춘 생활의 일부인 공간을 꿈꾸며 갤러리 문을 열었다. 갤러리 밀레는 작가의 부담이 전혀 없는, 지역에서 보기 드문 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까지 23차례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 소개자료 등도 모두 갤러리가 부담한다.
정 대표는 "갤러리 이름을 '밀레'라고 정한 이유도 모두에게 그 문턱을 낮추자는 의미에서였다"고 설명했다.
밀레는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스무 살이 넘어서야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귀족들의 삶에 치우친 화풍을 거부하고 시골에서 농민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냈다. 프랑스 혁명의 단초를 밀레의 작품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정 대표는 "꼭 그럴싸하고, 으리으리한 장소에 미술 작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지역 주민의 발길이 닿는 곳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밀레가 들어섰고 밀레는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장소가 됐다. 때로는 학교 밖 교실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과 손을 잡고 전시를 감상하러 오기도 하고, 전시를 보고 돌아간 아이들이 부모를 이끌고 다시 전시장을 찾기도 한다.
정 대표는 "최근에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한 초등학생 아이가 작품이 너무 좋다며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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