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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 이진숙 인천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이수진
이수진 기자 wed@kyeongin.com
입력 2023-02-21 18:54 수정 2023-02-21 18:55

사람의 마음 이끌어내는 능력으로, 범죄자 올바른 삶 살도록 돕고 싶다

이진숙=메인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인 이진숙 경위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끌어내는 능력을 활용해 범죄자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숨겨진 진실을 이끌어내는 직업이 있다. '프로파일러'라고 불리는 범죄심리분석관이다.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는 이진숙(52) 경위는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다. 이진숙 범죄심리분석관은 17년 동안 프로파일러로 근무하며 인천 미추홀구 모자 살인사건, 연수구 초등생 유괴 살인사건, 이춘재 사건, 고유정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해 냈다.

피의자 600여명 면담… 이춘재 가장 기억 남아
아버지 살해한 중3 학생 만남땐 함께 울기도
상담 자원봉사 도중 35세 나이에 경찰 입문
'1기 동기' 아직 현장 나가는 사람으로 유일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면서 600여명의 피의자를 면담해 온 이 경위.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범죄자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이춘재를 꼽았다.

이 경위는 "10여 차례에 걸쳐 이춘재와 면담을 진행했다. 그처럼 이기적이고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며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피해자의 고통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등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떠올렸다.

나이가 어린 피해자나 피의자들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고 이 경위는 설명한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며 "당시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피의자가 면회를 온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범죄심리분석관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지만, 그때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감인터뷰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 이진숙 인천경찰청 범죄분석관12

이 경위는 "대부분 범죄자가 면담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대다수 범죄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피의자와 신뢰관계를 쌓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이 경위는 설명했다.

그는 "면담을 시작하면 피의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수감 되기 전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다"며 "결국에는 본인의 범행을 후회하고 자백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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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위는 35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찰(범죄분석 경과/프로파일러)에 입문했다.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학과에 진학했으나, 교생실습을 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경위는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심리와 교육사회학을 공부했다.

두 아이를 낳고 대학교에서 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이 경위는 '범죄 분석' 경과 공채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 경위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상담 봉사를 하면서 쌓아 온 경험을 살리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호기심이 생겨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1월부터 사건 현장에 투입된 이 경위는 프로파일러 업무나 경찰 조직이 생각과는 달라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는 "당시 경찰 시험을 추천해 준 지인이 '일반인에서 범죄자로 면담 대상자가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험했다"며 "거의 매일 범죄자를 면담하고, 사건 현장에서 시체를 확인하는 등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수직적인 경찰 문화도 익숙해지지 않았다"며 "아이 둘을 낳고 어렵게 도전한 일이라 중도 포기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오기가 생겨 그만둘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여성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다 보니, 피의자들에게 무시를 당한 경험도 많다는 게 이 경위의 설명이다. 그는 "성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초반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제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험한 업무 환경 탓에 이 경위와 함께 경찰에 입문한 동기 중에는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범죄분석 경과 1기 중 아직도 현장에 나가는 사람은 이 경위가 유일하다.

그는 "범죄분석 1기 동기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지만, 그만두거나 다른 경과로 바꾸면서 현장에 나가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며 "일이 아무리 험해도 사건을 분석하고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순간이 너무 짜릿해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 경위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자신과 면담을 한 이후 다시는 재범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현장에 나간다고 한다. 그는 "범죄자 대부분은 교화할 수 있다"며 "사람의 마음을 잘 이끌어내는 능력을 활용해 범죄자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공감인터뷰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 이진숙 인천경찰청 범죄분석관91111

이 경위는 2020년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범죄자들의 이야기와 어려움 등을 담아냈다"고 했다. 올해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교육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추가로 펴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 경위는 "범죄자의 심리뿐 아니라 아이들이 극한의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양육과 관련된 이야기도 실을 예정"이라며 "10년 넘게 프로파일러로 일하면서 알게 된 지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퇴직한 이후에도 범죄자들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현재 교정 프로그램의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 범죄 유형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재범 방지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글/이수진기자 wed@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진숙 경위는?

1971년 인천 동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교육학과 상담심리학, 교육사회학 등을 공부했다.

2005년 7월 경찰청 범죄분석 특채 1기로 경찰에 입문한 이진숙 경위는 2006년 1월부터 현재까지 인천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진숙 경위는 2013년 모자살인사건, 2017년 초등생 유괴 살인사건, 2018년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 등 해결에 기여했다.

2020년 10월에는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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