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전쟁과 분단의 기억·(14)] 평화통일의 염원 모인 '파주 임진각'

신지영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입력 2023-08-07 20:16 수정 2023-08-07 20:44

'우리의 소원' 되새기는 그 곳… 평화는 언제 임진강을 건너나

2023080701000261800013162
/클립아트코리아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1972년 7월 4일 남북한은 3가지 원칙에 합의한 성명을 발표한다. 냉전이 완화되는 데탕트 시기에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이다. 남북한이 처음으로 정치적 대화 통로를 마련한 7·4 남북공동성명은 훗날 평화의 상징이 될 장소를 경기도에 남겼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후 개발 시작
인근 민통선 해제·국도 1호선 개통 영향
1985년 망배단… 2000년대 종합관광지로
2018년 337만 방문… 연간 수백만명 발길

'경의선 철교' 도라산역 등 신설되며 복구
동측 상행선 교각만 남아… 120년간 부침
포로 교환 '자유의 다리' 道기념물 지정
시기별 다양한 시설… 분단 경험 최적지


2023080701000261800013163

국도 1호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임진각'은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초에 7천500여평 대지에 8천만원 공사비가 들었는데 이를 해태제과가 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7·4 남북공동성명으로 파주 문산까지였던 민간인통제선이 임진강까지 해제됐고, 국도 1호선(통일로)이 개통한 게 임진각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

1972년 12월 23일 개관식을 한 임진각은 그 후로 1985년 망배단을 조성했고, 1991년 남북고위급회담으로 자유로 건설·국민 관광지 지정의 효과를 맛봤고, 2005년 평화누리·2017년 6·25전쟁 납북자기념관·2018년 평화누리 캠핑장·2020년 곤돌라·2022년 한반도 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등이 연이어 들어서며 각종 시설을 갖춘 종합 관광지로 개발됐다.



임진각 주변엔 임진강에 면해 서측으로 경의선 철로가 지나고, 동측으론 임진강을 건너는 통일대교가 있다. 그 사이 넓은 부지에 임진각이 위치한다. 주변은 대부분 군사시설구역과 농촌지역이다. 통일로와 자유로 끝에 임진각은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임진각 관광지를 찾은 사람은 111만4천24명이었다. 2020년 121만명이 찾았는데 이는 코로나19로 사회 활동이 위축된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294만명, 2018년 337만명이 찾을 정도로 임진각은 시민 곁 가까이에 있다.

관광지 기획 (정치부)4
임진각의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경인일보DB

임진각엔 분단과 냉전을 상징하는 경의선 철교, 자유의 다리가 있다. 경의선 개통과 함께 1905년 2월 개통된 임진강 철교는 남단인 파주 문산 마정리와 북단인 파주 장단 노상리를 연결한다. 1905년부터 6·25까지 경의선 상행과 하행 2개의 단선철교가 있었으나 전쟁 중 모두 파괴됐다. 하행선 철교만 복구가 됐고 임진각과 판문점을 잇는 도로교로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다.

이후 자유의 다리가 보수돼 도보교로 쓰였고 경의선 철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인 경의선 복구 사업으로 임진강역과 도라산역이 신설되며 도로교에서 철도교로 원상 복구했다.

철교로 전환된 후론 특별 통근열차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활용되다 2021년 12월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도라산역 연장 일환으로 전철화됐다. 서측 하행선은 2002년 철로로 복원된 뒤 이처럼 전철화돼 쓰이고 있지만 동측 상행선은 쓰이지 않는다.

교각만 남아 있는 동측 상행선은 임진강 남단 스카이워크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6·25 전쟁 중 파괴와 임시 복구를 거쳤고 2000년대 들어 남북 평화 무드로 복원이 되는 등 경의선 철교는 전쟁, 분단, 냉전을 거치며 120년 동안 부침을 겪었다.

52866624078_3d1f3ba573_o
지난 1999년 12월 31일 파주 임진각에서 '새천년 통일기원제' 일환으로 열린 '횃불 대행진'. /경기도 제공

경의선 철교 외에 '마정리 경의선 교량 교각'도 있다. 말 그대로 교각만 남은 유산이다. 6·25 전쟁 시 교각을 제외한 상부가 파괴됐고 현재까지 파괴된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남북단을 연결하는 경의중앙선의 임진강역에서 임진각 방향으로 있는 첫 번째 교량의 흔적이다.

임진각과 위치는 가까운데, 통일로에서 임진각으로 연결되는 임진각로에 작은 수로 위에 설치된 마정교에서 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교각에 서 있는 수로에 낚시터도 있어 교각을 확인하기 용이하다. 교각면에는 거푸집의 콘크리트 타설 흔적이 남아 있고 남아 있는 3기 중 2기에는 백화현상도 관찰된다.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자유의 다리는 1953년 휴전 협정 이후 한국군 포로 1만2천773명을 교환하기 위해 가설한 교량이다. 길이 83m, 너비 4.5m, 높이 8m로 목조와 철재로 지었다. 판문점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면 임진각엔 '자유의 다리'가 있다.

임진각엔 BEAT 131 군사시설 지하벙커·망배단·통일공원·평화의 종·철도중단점·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도 있다. BEAT 131 지하벙커는 6·25 전쟁 당시 탄약 보관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군 시설로 현재는 전시관으로 쓰인다.

52883181095_8596696318_o
지난 1999년 12월 31일 파주 임진각에서 '평화의 종각 준공식'. /경기도 제공

1985년 설치된 망배단에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실향민이 명절마다 제사를 지낸다.

강산이 새겨진 망배탑, 향로가 있는데 정초에는 연시제를 지내고 추석엔 합동 망향제를 올린다. 통일공원엔 임진각 지역 전적비, 미 육군 제187공수전투단 기념비, 트루먼 미국 대통령 동상,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 미얀마 아웅산 순국외교사절 위령탑 등 전쟁과 분단 이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관련된 구조물이 다수 소재한다.

총 무게 21t의 평화의 종은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만들었다. 2000년 1월 1일 0시에 21세기를 맞으며 21번 타종이 이뤄졌고 종각 면적도 21평으로 맞췄다.

철도중단점 동판은 1979년 붙었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장단역터에서 2004년 임진각으로 이전했는데, 6·25 당시 중공군 침입으로 서울 후퇴가 이뤄지며 증기기관차가 북한군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연합군이 장단역을 폭격하며 파괴된 열차다.

53074399086_3843c07292_o
지난 7월 27일 파주 임진각 일원에서 열린 2023 세계예술인 한반도 평화선언. 2023.7.27 /경기도 제공

이처럼 임진각에는 시기별로 다양한 기념물과 시설이 들어서 있다. 2020년부턴 임진강 북쪽 캠프 그리브스와 연결된 곤돌라도 운영 중이고,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도 있어 시민들이 남북 분단과 평화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지로 꼽힌다.

권역 내 최초 건물인 '임진각휴게소'는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분단과 냉전의 상징 유산이 남아 있는 임진각은 관광객 뿐 아니라 실향민에게도 의미 있는 공간이다.

시간이 화석처럼 켜켜이 쌓여 지층을 이룬 임진각엔 다채로운 시점이 조화롭게 엮여 있다. 각기 유산의 시간대와 시점은 모두 다를지라도 평화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는 같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23080701000261800013167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