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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단의 기억·(15)] 파주 옛 미군 위락시설 '럭키바·DMZ홀·문화극장'

신지영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입력 2023-08-21 20:18 수정 2023-08-21 20:55

'강아지도 돈 물고 다닌다'… 밤이 없던 장파리, 낮에도 밤 같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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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미군 클럽 DMZ홀의 현재 모습.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348-8. 미군 클럽 '럭키바'가 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있었던 럭키바는 철거됐고 자갈 바닥의 주차장만 남았다. 1960년대 조성돼 미군부대 향락시설로 널리 알려진 럭키바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파주 파평면 장파리는 7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유동인구가 3만명에 달할 정도로 성황이었다고 한다. 임진강 너머 미군 때문에 형성된 상권이었다. "동네 강아지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번창했던 장파리 일대는 지금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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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럭키바의 모습. /파평참사랑장학회 제공

장마루로와 장마루8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50m 가량 들어가면 골목에 '럭키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동의 건물 중 상부가 무너진 채 방치된 1동을 제외하곤 대체로 외형이 온전했다고 한다.

건물은 지상 2층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구조인데 정면에 2개 창문이 있고 우측에 출입구가 났었다. 지난해에도 오랜 기간 방치된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순 없었다고 한다. 다만 창문을 통해 넓은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고, 클럽 홀 하우스로 쓰였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확인됐다.



모든 건 과거형이다. 지난해 어느 시점 건물주가 럭키바를 철거했기 때문이다. 럭키바가 있었던 자리 앞쪽에 거주하는 파평면 주민은 "작년에 철거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래 방치한 건물이니까 허물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면적 550㎡, 지상 3층으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미군과 접객원으로 붐볐던 럭키바는 없어졌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등록 문화재를 발굴해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사이 또 하나의 기억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럭키바는 장파리 내 가장 규모가 큰 미군 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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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클럽 럭키바 부지. 1960년대 만들어졌으나 지난해 철거돼 현재는 주차장 부지로 쓰인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1970년대만 해도 하루 유동인구 3만
당시 최대 규모 '럭키바' 지난해 철거
인근 'DMZ홀' 무명 조용필 무대도


장파리 내 또 다른 미군클럽 'DMZ홀'은 다행히도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럭키바에서 도보로 5분 내외 장파리 377-12에 위치한 DMZ홀은 장마루로와 장마루 14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40m 가량 들어간 골목 좌측에 있다.

골목 내 주택이 있고 공장과 식당이 붙어 있어 이곳이 과거 미군 클럽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창문 사이 기둥 위치를 돌출해 표현한 지상 1층 콘크리트 건물인데 외부는 평면 형태가 불규칙한 판형 석재로 장식했다.

정면 왼쪽에 주 출입구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고 위에 파라펫(옥상이나 평지붕, 베란다 주위의 난간이나 흉벽)을 세워 2층 콘크리트 건물처럼 보인다. 유명한 미군 클럽 '라스트찬스'처럼 출입구 양 옆 기둥에 석재타일이 장식돼 있다. 당시 유행하던 양식으로 보인다.

출입구는 오랜 시간 방치돼 내부로 진입은 불가능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어진 건물 다른 편은 현재 거주 공간으로 쓰인다. LPG 가스통으로 생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DMZ홀은 라스트찬스와 비슷한 시기(1960년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수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던 곳으로 유명한 라스트찬스지만, 실제 노래를 부른 곳이 이곳 DMZ홀이라는 증언도 있다.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라스트찬스를 제외하면 장파리 내 미군클럽 중 그나마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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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골, 미군 영향 유흥시설 번창
1962년 개장 '문화극장' 현재까지
원형 잃은 채 지역행사 공간 활용
미군 클럽, 대중음악사 중요 장소


파주엔 장파리 외에 미군 주둔 영향으로 형성된 유흥시설 밀집 지역이 또 있다. '용주골'로 불리운 장소다. 파주읍과 법원읍을 동서로 연결하는 술이홀로와 연풍시장 교차로변인데 미군 주둔 영향으로 용주골로 불리며 미군들이 이용하던 클럽과 같은 유흥시설이 번창했다.

이곳에 당시를 짐작할 만한 시설인 '문화극장'이 보존돼 있다. 1962년 개장한 문화극장은 연풍시장 교차로에서 갈곡천 방향으로 남쪽으로 진입해 형성된 연풍시장 골목에 자리 잡았다. 인근이 번성한 시기 극장으로 활용됐고 미상의 시기에 극장이 폐관된 뒤 1층 소매점, 2층 무도장으로 쓰였다.

극장은 내부에 기둥이 없어야 하는 대공간 구조를 띠는데 극장 용도가 바뀌면서 1층과 2층 사이 슬래브를 데크플레이트로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극장 평면에서 관찰되는 대합실, 영사실, 화장실, 복도, 매표소 등도 찾아보기 힘들다. 누군가 설명하지 않으면 이곳이 극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다.

내부와 외부 모두 원형을 많이 상실한 것을 보인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파주지역의 금촌, 문산, 법원리, 연풍리에는 극장이 존재했다. 이는 영화 상영 외에도 지역 행사, 강연, 집회 등으로 극장이 쓰였기 때문인데 모두 미군이 주둔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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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연풍 문화극장 모습. 이곳은 현재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인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연풍 문화극장 역시 미군 위문공연, 국가계몽 영상 상영 등 다목적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됐다. 미군 때문에 생긴 시설이기 때문에 미군 철수 이후에 급격히 쇠락했다. 극장 자체의 건축 가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규모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문화재적 가치로 꼽힌다.

문화극장은 쇠락한 기지촌을 되살리기 위한 지자체와 주민의 노력으로 현재는 주민들이 활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인다. 최근 찾은 문화극장 내부에서는 지역민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럭키바는 사라졌고 DMZ홀은 모습을 잃은 채 방치돼 있고 문화극장은 용도를 탈바꿈하고 여전히 쓰인다. 미군 거주로 생성된 장파리는 쇠락한 농촌 도시의 전형이다. 이따금 버스가 지나다닐 뿐 과거 흥성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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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파주 장파리 모습. /파평참사랑장학회 제공

미군 주둔의 역사는 어떤 이에겐 쳐다보기 싫은 과거이고 수면 아래 묻어야 할 이야기다. 없었던 일처럼 지내는 것이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럭키바가 허물어져 주차장으로 변한 것 역시 굳이 이곳을 기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군 주둔지 인근에 조성된 유흥시설은 잊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선 삭제한 채 기술할 수 없는 중요한 기록이다. 다음 '전쟁과 문화유산' 기획은 럭키바처럼 사라진 유산, 파주 지역의 미군 클럽을 찾아간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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