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전쟁과 분단의 기억·(20)] 되짚어 본 전쟁 문화 유산·(上)

신지영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입력 2023-11-13 20:24 수정 2024-02-07 17:09

잊지마라! '상흔의 역사'… 우리는 여전히 정전국가

2023111301000530900025331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지난 2월 연재를 시작한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매월 2차례씩 19번에 걸쳐 경기도 전역의 미등록 전쟁 문화유산을 찾았다. 정전 70주년, 여전히 분단 상태인 한반도에서 북한과 경계를 접한 경기도엔 한국전쟁의 상흔인 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道-문화재연구원 실태조사… 조사목록 154건 올라
소재 파악 어렵거나 이미 소멸된 건조물 44건 달해

보도에 앞서 경기도와 경기도문화재연구원은 분단 상황과 관련한 유산을 목록화하는 실태조사를 벌였다. 모두 154건의 유산이 조사목록에 올랐는데 건조물(건축물)이 100건이었고 전쟁과 분단의 기억이 첫 번째로 찾아간 유산, '용치'가 54건이었다. 

 

목록에는 올랐지만 사라진 유산도 여럿이었다. 미군 부대 안에 소재해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이미 사라진 건조물들이 44건에 달했다. 사라짐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지난해 여름 실태조사에선 건재했던 '파주 럭키바'가 올해 들어 사라졌다는 사실(8월 22일자 11면 보도=[전쟁과 분단의 기억·(15)] 파주 옛 미군 위락시설 '럭키바·DMZ홀·문화극장')도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전쟁 문화 유산을 등한시 한다면 또 다른 유산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 곁 유산을 발견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보전하는데 이르기까지 인식 변화를 촉구하며 연간 진행된 보도를 통해 다시금 전쟁 문화 유산의 현실을 되짚는다.
 

'용치' 한탄강 바라보던 주민 제보로 세상에 드러나
장갑차·전차 차단용 콘크리트 구조물… 도내 32곳
대북 경계심 고조 1970년대 추정… 최소높이 1.5m

전쟁 문화 유산 '용치'와 노르웨이 야전병원 '노르매시'는 우연히 발견됐다. 용치는 어느 날 집 밖의 한탄강을 바라보던 한 주민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대전차 장애물 용치 설치는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용의 이빨(Dragon's Teeth)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용치(龍齒)'는 장갑차나 전차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통로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로 경기도엔 32개소(고양 2, 양주 1, 연천 4, 의정부 2, 파주 21, 포천 2)가 남아 있다.

1968년 1월 21일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북한 김신조의 침투 이후 대북 경계심이 높아진 1970년대 주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당 높이가 최소 1.5m 이상이며 최대 2m가 훌쩍 넘는 것도 있을 정도로 위용을 자랑한다. 주로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북부지역에 분포돼 있다. 주로 하천에 설치된 용치는 물길을 막아 여름철 범람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 일부가 철거되기도 했다.



고양 공릉천엔 용치가 1㎞에 걸쳐 설치됐고, 파주에도 하천과 육지에 걸쳐 1.3㎞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돼 있다. 이 밖에 의정부 중랑천에도 130m 길이, 연천 전곡리 한탄강변에도 580m 길이로 설치됐다. 용치는 사용된 적이 없는 군사시설이다. 설치 후 50년이 지나며 사람들은 용치의 설치 목적을 잊었다.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는 용치지만 용치는 분단 이후 고조됐던 남북의 갈등을 그 거대한 규모로 방증하고 웅변한다. 용치가 주는 메시지는 한국이 여전한 분단국가이며 전쟁의 그림자가 서늘하게 서린 정전 국가라는 점이다.

'노르매시' 동두천 군부대 전입온 군인에 의해 발견
당시 참전 용사·파견 의료진 사용… 60년 동안 방치
노르웨이와 연대 상징적 건물… '문화재 등록' 요구


한국전쟁 노르웨이 참전용사와 파견 의료진이 사용한 '노르매시' 야전병원은 2010년 발견됐다. 동두천 육군 부대로 전입한 한 군인에 의해서였다. 먼 이국 노르웨이 군인의 희생이 담긴 유산이 60년 동안 방치됐던 것이다. 노르매시는 국가나 지자체가 아니라 한 개인에 의해 보전 작업이 이뤄졌다. 군인은 펜스를 만들고 잡초를 뽑고 전기를 연결해 유산이 잊히지 않도록 애썼다.

군 훈련장 안에 자리 잡고 있어 민간인 출입이 어려운 곳이었던 노르매시는 군인의 노력으로 군사지역과 분리되도록 철제 울타리가 만들어졌고 군사지역을 거치지 않고 노르매시로만 왕래가 가능하도록 쪽문이 만들어지며 견학이 가능한 장소가 됐다. 건물 등기까지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발굴된 노르매시는 먼 이국 노르웨이와 한국의 인연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노르웨이는 73년 전, 한국 원조가 결정되자 1951년 7월 의사 85명, 간호사 123명, 성직자 7명, 장교 및 부사관 98명, 장병 294명 등을 한국에 파견했다. 노르매시 의료진은 반 년 동안 근무할 예정이었지만 자발적으로 복무기간을 1년 이상 연장했다고 한다.

노르매시가 없다면 노르웨이의 희생, 한국과의 교류는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노르매시가 있어 노르웨이의 연대는 사실로서 다가온다. 전쟁 과정에 한국에 쏟아진 국제 사회의 연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산이 개인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군인은 내년 자신이 전역한 뒤 노르매시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걱정했고, 국가와 지자체에 문화재 등록을 요구했다.

집 근처 하천에서 발견한 용치, 개인이 보전 작업에 나선 노르매시는 전쟁 문화 유산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유산은 공통점이 있다.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몰랐던 유산이라는 것이 첫째고 국가나 지자체가 문화재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둘째다.

용치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민간인 박종우 작가는 취재 중 이런 말을 들려줬다.

박 작가는 "보존 가치가 있는 용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대접해야 한다. 용치처럼 전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노르매시를 보전한 군인은 "제가 전역하면 이 시설도 철거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치돼 있다. 그것이 두렵다. 전쟁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인 만큼 후대를 위해 누군가는 나서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관할 지자체는 노르매시 야전병원을 경기도 등록 문화재로 신청했다. 전쟁은 이전 세대의 경험이고 지나간 역사다. 하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건 현 세대의 몫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과제다. 2023년 한국엔 전쟁 문화 유산을 기리고 보전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연재_경기도근대문화유산전쟁과분단의기억1.jpg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