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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6)] 이원석 시인 -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입력 2023-11-29 19:04 수정 2023-12-04 19:19

세계최고 인천공항 빛내는 청소노동자 이야기


인천공항 면세점 물류창고 일해
새벽엔 매장공사·물류직원 북적
아침에 가니 작업자 다 사라지고
차려입은 여행객 유유히 쇼핑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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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비행운
비행운.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50쪽. 2012년 7월 19일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서 주짓수를 가르치던 체육관의 운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1차, 2차, 3차, 코로나가 심해질 때마다 대출을 받았다. 이제 거의 끝날 때가 다 되었다 싶을 만큼 코로나가 잦아들기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다시 대출을 받았는데 4차 유행이 다시 시작되었고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공고한 팬데믹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했다. 체육관 운영은 점점 어려워지고 코로나는 종식될 기미가 없었다.

그해 겨울에 체육관을 폐업하기로 결정하고 국가의 철거 지원을 받아 체육관을 철거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해 봄, 코로나는 거의 종식 수준으로 잦아들었다. 마스크는 해제되고 체육시설 규제도, 밀접접촉 제한도 모두 사라졌다. 얄궂은 장난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문학작품에서 늘 봐왔지만 실제로 겪으니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다시 먹고 살 일이 막막해져서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게 됐다. 어떤 날은 쿠팡에 가서 야간 작업조로 택배 상자를 나르고 또 다른 날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축 쓰레기를 치웠다. 생수 배달이 돈이 된다기에 면접을 보고 오고 어쩌고 하던 어느 날, 10년 전에 같이 주짓수를 배우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돌려돌려 안부를 묻던 후배가 인천공항에 몸쓰는 일이 있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조심히 물었다. 체육관을 폐업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은 모양이었다.



그가 소개한 일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물류창고 일이었다. 화물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면세점 상품들을 받아 창고에 적치하고 면세점에서 상품이 팔려 나가서 매장의 상품들이 비워지면 창고에서 상품을 가져다가 다시 채워주는 일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수레를 끄는 일이다.

해외 여행객이 많은 주말이나 연휴 기간에 면세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면세상품들은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이라지만 애초에 가격대가 높아서 그리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팔려나가고 들어오고 다시 팔려나가고 금세 매장의 진열대는 비워졌다. 그럴 때면 200㎏은 족히 넘게 실은 카트 두 대를 양손으로 끌며 하루 종일 꿀벌처럼 지하 2층의 창고와 3층의 매장을 오가며 상품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한번은 새로운 구역에 면세점이 들어서면서 밤샘 근무를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밤 10시가 넘었음에도 인테리어 공사의 완성은 요원해 보였고 저게 언제 마무리되고 청소가 될까 걱정을 하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우리가 수레 가득 상품을 실어다가 매장 앞에 부려주고 그 상품이 진열될 참이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영업이 시작되어야 함에도 새벽 3시가 되고도 공사는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으므로 공사는 공사대로 계속되고 우리는 우리대로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상품을 실어 날랐다. 여행객이 거의 없는 새벽 시간에 공항 안은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면세점 직원들과 물류 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고를 마치고 새벽 5시쯤 창고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매장으로 올라가 보니 그 넓디넓은 공간의 수많은 면세점들이 모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영업 준비를 마치고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공사를 하며 용접을 하고 자재를 자르고 물건을 나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모두 사라졌고 잘 차려입은 여행객들이 반짝이는 면세점을 유유히 걸어다니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 인천공항에 왔을 때 화장실이 우리 집보다 깨끗하고 편안하다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군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그 깨끗함이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제는 어느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어떤 분인지 어느 창고 어디에서 쉬시는지, 무슨 일을 얼마나 하시는지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안다.

모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 경험은 직접 체험뿐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잘 쓴 소설은 때로 현실보다 더 날카롭고 정확하게 세계의 본질을 보여준다. 인천 영종도에는 세계 최고의 국제공항이 있고 그 공항을 빛내는 청소 노동자들이 있고 우리에겐 그 이야기를 담은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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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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