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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10)] 이원석 시인 - 이상실 소설집 '콜트스트링의 겨울'

입력 2023-12-13 19:00 수정 2024-02-08 15:19

4464일간 꺾이지 않는 투쟁과 희망의 노래 


기타 메고 다니는 친구들 부러워
용돈 모아 구입한 삼익악기 제품
콜트가 있다는 건 뉴스로 알게돼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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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스트링
콜트스트링의 겨울. 이상실 지음. 도서출판 바람꽃 펴냄. 268쪽. 2019년 09월 25일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은 중학생 때였다. 당시 통기타 연주가 유행을 했고, 친구들이 기타를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티비에서 가수들이 기타를 치는 것을 보고 한 번도 멋있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기타를 메고 다니자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뻔한 살림에 기타를 사달라고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고, 용돈을 모으는 수밖에 없었다. 오백원 천원을 모아 기타를 사는데 일 년쯤 걸렸다. 그것도 삼익악기 공장에 다닌다는 이웃집 아저씨의 직원 할인혜택을 받아 칠 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것 같다. 키가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 나이에 커다란 기타를 메고 다니니 마치 어른이 다 된 기분이었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책등에 기타 줄을 그려 넣고서는 책상 밑으로 몰래 코드를 잡는 연습을 했다. 뭔가에 열중하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빠져들곤 하던 때였다. 30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다 보면 삼익악기 공장 건물 앞을 지나갔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같은 회사 제품인 내 기타가 떠올랐고 어린 마음에 저기 내 기타 회사다, 하며 좋아했었다.

한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그 사람 인생 시기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교회 친구들과 어울려 기타를 시작했던 중학생 때, 내가 기타를 치며 주로 부르던 노래는 가스펠이었다. 학생자치회 탄압과 폭력교사 문제로 학내시위에 앞장을 섰던 고등학교 때 주로 기타 치며 부르던 노래는 민중가요였다. 생경할수록 오히려 마음에 와닿던 가사들도 가사들이었지만 곡조가 힘차고 빠른 노래보다는 구슬프고 느린 노래들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는 김광석과 강산에 노래를 기타로 쳤다. 넘쳐나는 젊음에 휩쓸려 갈피를 모르고 쏘다니던 때였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학원강사 생활을 하던 때, 부평 콜트 콜텍 기타 공장에서 불법해고 문제로 투쟁 중이라는 기사를 뉴스로 접했다. 삼익악기 기타는 들어봤어도 콜트 기타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 밖 이야기는 바로 지척에서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법이었다.

그 공장이 전세계 기타의 삼분의 일을 만드는 대단한 회사인데 매년 70억씩 흑자가 났으면서도 그걸 숨기고 경영이 어렵다면서 임금을 동결하려다가 노조에서 이것을 문제 삼자 노동자들을 모조리 해고하고 공장을 위장폐업하고 기타 공장 전체를 해외로 옮겨버렸다고 했다. 악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부당해고와 위장폐업에 대해 법원이 해고 노동자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회사의 불법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뉴스를 마지막으로 콜트 콜텍의 이야기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콜트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그 이후로도 사측과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13년의 세월을 더 싸워야 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사회의 무관심이란 얼마나 차갑고 아프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인가. 자신의 삶만을 돌보는 개인은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가. 법원의 판결은 뒤집히고 해고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고 사회적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병들어 갔다. 그리고 다시 4천464일간의 꺾이지 않는 투쟁과 연대와 희망의 노래가 있었다.

이상실 작가의 소설집 '콜트스트링의 겨울'이라는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콜트 콜텍의 이야기라는 걸 금방 알았다. 무관심이라는 것이 이웃의 고통에 얼마나 둔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뒤늦은 반성을 하며 소설을 따라 읽었다. 투박한 문장과 선명한 선악 구도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아픔의 이야기들을 두루 살피고 골고루 쓰다듬으려는 노력이 마음에 와닿는 책이다.

콜트 콜텍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4·3 항쟁, 입시 교육, 노인 치매 돌봄 등 서민의 다양한 삶의 굽이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있다. 표제작 '콜트스트링의 겨울'의 주인공 윤서는 랜드로바를 신지 않고 투쟁 의지로 이름 붙인 '콜트로바'를 신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달로바'를 잠시 신기도 하지만 동료가 주위를 가늠하며 길을 더듬을 때, 다시 콜트로바를 신으러 돌아온다. 여러 길을 걷던 민중이 결국은 다시 서로 도와 한마음으로 세계를 바꾸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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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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