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경인일보

[영상+] "우리도 살아야지" 속절없이 흐른 세월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2)]

공지영·김동한·목은수
공지영·김동한·목은수 기자 dong@kyeongin.com
입력 2024-04-15 20:30 수정 2024-04-16 18:32

참사후 10년… 갈등의 안산


1년 지나도록 도시 전체가 추모·애도
일상 제지·취재 쇄도… 일부 지쳐가

 



untitled-1.jpg
화랑유원지 야경.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건립될 예정인 4·16 생명안전공원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2024.4.15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사그라드는 추모

참사 이후 1년쯤 지나자 사회는 참사의 슬픔을 잊어갔다. 전국에서 줄을 잇던 조문객도 많이 줄어들었고 점점 잊혀갔다. 안산 시민들만 일상에서 세월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안산은 도시 전체가 여전히 추모와 애도 분위기가 이어졌다. 상가에선 음악도 틀지 못했다. 안산시에서 자중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죽었는데 노래가 나오냐"는 시선이 두려웠다.



1년 내내 언론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단원고 인근 빌라들을 시시때때로 찍어갔다. "안산이 아파트도 없는 동네인 것처럼, 일부러 건물에 금 간 부분만 찍어서 전국에 내보내는게 상처였다"고 토로했다. 동사무소, 문화체육센터 등 공공에서 하던 주민프로그램도 모두 취소됐다.

봄이 되면 더 그랬다. 거의 매일 기자들과 외부 사람들이 오가니 오히려 주민들은 외출을 꺼렸다. 이때를 두고 주민들은 "마을에 웃음이 없고 암울했으며 특히 4월엔 밝은 옷도 입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안하고 마음 아파서 여전히 추모와 애도가 이어졌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갈등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랑유원지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
반대하는 지역주민… 서운한 유가족

계속된 집회·현수막… 상권 위축시켜
피해보상금 관련 유언비언 등 난무
서로에게 상처뿐인 일련의 사건·사고

 

2024041401010004469.jpg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안산시내 전경. 2024.4.14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선체 인양, 희생자 유해 수습 등 참사를 둘러싼 무엇하나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정부와 갈등을 겪는 장면들이 길게 이어지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온라인을 통해 동네에 떠돌면서 시민들의 마음도 복잡해졌다.

안산에 산다고 하면 세월호 얘기부터 꺼내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안산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세월호가 서두에 나오는 것에 소외감을 느꼈다.

추모집회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일부 시민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고잔동·호수동·중앙동 일대 상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근심이 쌓여갔다. 참사 당시 생업을 잠시 놓고 자원봉사까지 하던 이들이었다. 해가 지나고 봄이 왔지만, 안산에선 크게 웃고 떠들거나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줄어가는 약속과 회식에 매출은 반토막 났고, 한두 군데 문을 닫는 점포들도 생겨났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기억이다. 평소보다 매출이 배로 뛰는 안산시 최대 축제 '2014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취소됐을 때도 상인들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상인회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계속되는 집회에 상가 주변에 부착된 현수막과 노란 리본이 상권 분위기를 위축시키니 집회 장소를 옮겨달라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안산 도리섬상인회 관계자는 "참사 이후 인근 안산문화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고 6~7개월 지난 시점에 상인회에서 세월호가족협의회와 대책회의를 하는 등 직접 나섰다"며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상인들은 뭔 죄냐'라는 얘기들이 오갔다"라고 말했다.

유가족을 둘러싼 유언비어들도 안산시민들을 괴롭게 했다. 2015년 희생자 가족에게 지급되는 피해보상금을 두고 안산지역 안팎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희망제작소가 2020년 발간한 '세월호 참사 피해지역 재난극복 공동체 회복 모델 구축 연구 최종보고서'를 보면, 당시 "OOO는 보상금 받아 차 샀다", "XXX는 이사 갔다"는 식의 각종 유언비어가 안산 전역에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원고 희생학생이 많은 와동의 한 주민은 "'희생자 가족들이 지금 건물 사서 슈퍼하고 있다',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자식 팔아서 연금 등 혜택 누린다', '겸손하지 않다'는 등의 얘기가 동네에서 심심찮게 들려왔다"며 "참사 직후 합동분향소에 가서 밥을 짓는 봉사를 하며 도왔는데, 이런 얘기가 들리니까 나중엔 내가 왜 바보짓을 했을까 싶더라"고 털어놨다.

0024.jpg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납골당 건립반대 시위. /경인일보DB

■ 불붙은 민민 갈등


세월호 참사 직후 경험했던 안산 공동체의 힘은 점점 와해돼 갔다. 어떤 부분에선 '분노'로까지 변질되기 시작했다.

2016년 단원고 기억교실 이전 사태에서 희생자 가족과 시민 간 갈등이 촉발됐다. 당시 단원고 희생학생들이 실제 수업받던 교실을 기억교실(2학년 교실 10개·교무실 1개)로 보존해 왔는데, 원래대로라면 희생학생들이 졸업했어야 할 2016년 이후에도 교실이 보존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2016학년도 신입생 300여명이 사용할 교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2015년부터 줄곧 제기돼 왔지만 존치와 이전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16학년도 신입생들이 음악실 등 특별교실을 리모델링한 임시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재학생 학부모들은 "임시 교사를 마련하거나 전교생을 전학시켜달라"는 최후통첩까지 보내며 갈등이 격화됐다. 당시 정진씨 아들은 단원고에 입학한 1학년 신입생이었는데, "몇달동안 시끄러웠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공부할 수 있는 학업 분위기도 아니었다"며 "그래도 희생자 엄마들 아픔이 너무 크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학부모들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안산시와 경기도교육청뿐만 아니라 종교계까지 중재에 나섰다. 한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은 2016년 7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중재로 기억교실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달인 8월 20일 기억교실은 구 안산교육지원청(현 4·16민주시민교육원) 별관 1~2층으로 이전했다. 현재 기억교실은 4·16민주시민교육원 맞은편에 위치한 단원고4·16기억교실에 위치해 있다.

중재에 나섰던 김은호 안산 희망교회 목사는 "유가족과 재학생 부모들이 터놓고 이야기 하자는 취지로 소통 기구를 만들었지만, 합의가 불가능했다"며 "결국 유가족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풀렸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유가족에겐 상처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치러진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변을 낳았다. 단원고가 있고 희생 학생이 가장 많았던 고잔1동(81명)이 포함된 단원을과, 그다음 순이었던 와동(69명)과 선부3동(54명)이 포함된 단원갑에서 보수인 새누리당 후보들이 당선된 것이다.

갈등 깊어지자 곳곳 공동체 회복 활동
고잔동 '마을해설사 프로그램' 운영

 

진보세가 강한 안산에서, 더구나 당시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변이었다. 오해와 갈등이 뒤섞여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안산 시민들의 복잡한 마음이 선거에 반영됐다고 해석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갈등은 2018년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선정 추진을 두고 강하게 폭발했다. 4·16생명안전공원은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건립되기로 정해져 있다. 안산시는 2016년 7월 '4·16세월호참사 안산시 추모사업 협의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고, 부지 후보지로는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가 지목됐다.

[포토]'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 기념식수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 기념식수 행사. /경인일보DB
 

하지만 부지 후보지인 화랑유원지에 대해 지역 내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유원지를 납골당으로 만들려고 한다", "도심 한복판에 납골당이 들어서면 시 전체 분위기가 침체할 것", "집값을 떨어뜨릴 것" 등이 주된 근거였다.

안산시는 '25인 위원회' 등을 유치해 시민들의 이견을 봉합하려 했지만 막지 못했다. 2018년 6월 열린 지방선거가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각 후보가 정당 기조에 따라 '4·16생명안전공원 조성' '화랑유원지 봉안시설 백지화' 등 공약을 반대로 내걸면서 정치 소재로 또 악용됐다.

2019년 2월, 4·16생명안전공원이 화랑유원지에 조성되기로 결정났지만,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반대 단체들의 시위도 계속됐다. 시위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 열렸고, 텐트를 치고 장기간 단식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에 물가상승 등 경기악화로 공사가 지연되며 건립 자체가 늦어졌다. 결국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올해, 하반기 착공에 들어가 2026년 하반기 준공 예정이다.

 

■ 여전히 남은 불씨

와동은 고잔동 다음으로 세월호참사 피해가정이 많은 곳이다. 2018년 416재단이 조사한 '세월호참사 피해지역 주민의 정신건강과 공동체 결속력 현황조사'에서 와동은 25개동 중에서 안산시 지역사회 불신 등을 나타내는 '공동체 회복력' 부문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아 공동체 회복력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들이 직접 만난 와동 주민들 중엔 실제로 여전히 유가족 보상 문제 관련해 불신이 크고 억울해 하는 측면도 강했다. 안산 내 마을조직활동가들은 와동이 40~50대 허리인구가 없고 노인과 젊은 신혼부부가 많은 것, 불안정한 거주자인 세입자가 많은 점을 이유로 꼽았다. 약자와 약자가 서로 갈등하고 부딪히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서로 상처를 주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유가족들은 견디기가 어렵다. 조은정 학생 엄마 박정화(57)씨는 "안산의 아이들이 참사를 겪었으니 안산에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안산 밖을 나가야 위로를 받았다"며 "기억교실 등 세월호 관련 공간을 찾는 사람들도 안산 주민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민관 모두 공동체 와해현상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안산시는 2017년부터 '공동체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세월호피해자지원법은 피해자, 유가족을 비롯해 안산시민의 심리안정과 공동체 회복을 국가의 책임으로 의무화했다.

2024041401010004472.jpg
4·16 생명안전공원, 2024.4.14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이 이뤄졌고,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단계에 걸쳐 공동체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유가족과 안산시민 사이의 접점을 늘려 마을공동체를 되살리는 게 프로그램의 주된 목표다.

실제 안산지역 곳곳에서 마을공동체 회복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잔동에서는 '같이걷자'라는 이름의 '마을해설사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고잔동 주민들이 직접 고잔동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역사와 세월호참사 거점 시설과 이슈를 소개한다. 세월호참사를 마을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함께 기억하기 위함이다.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임남희 선부종합사회복지관 부장은 고잔동 주민들 모두 참사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로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참사 초기 단원고와 분향소를 찾아와 함께 울고 도움을 준 것도 주민들이고, 기억교실 이전을 주장하고 화랑유원지 부지에 생명안전공원 유치를 반대한 것도 주민들"이라며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등 전국으로 떠나 있는 동안 지역에 남아 유가족을 도왔던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돌봄이 부재했다. 그 틈새가 결국 지금의 갈등을 만든 단초"라고 말했다.

/공지영·김동한·목은수기자 dong@kyeongin.com

 

00_1.jpg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