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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맥 끊긴 한북정맥… 난개발로 '山山조각'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1-1)]

입력 2024-05-06 20:10 수정 2024-06-07 15:32

'포천~파주' 경기북부 관통 산줄기

산림당국·지자체 역할 사실상 전무

포장도로가 가로지른 포천 백운산
광덕고개엔 등산객 발길 이어지고
인근 사유지 표시 철제 펜스 '눈살'

파주 장명산 산림 파괴 현재진행형
산허리 절반 뜯겨난 신도시개발 붐
당시 채석장엔 콘크리트 공장 설립

 

포천에서 파주까지, 경기북부 지역을 하나로 관통하는 산줄기이자 한강의 주요 물길인 한북정맥이 신음하고 있다. '경기도 자연환경의 보고(寶庫)'라며 한때 모였던 관심은 무한한 개발논리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백두대간 서남쪽으로 장중히 뻗은 한북정맥은 이제 하얀 맨살을 드러낸 채 곳곳이 잘려 있다.

경인일보는 포천 광덕고개에서 파주 장명산에 이르는 한북정맥 경기도 전 구간을 현장 취재했다. 처음과 끝 구간의 조명을 시작으로 훼손된 한북정맥의 현실적인 보전 방안은 무엇일지 짚어본다. → 위치도 참조·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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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전 포천시 이동면. 여름이면 구름 인파가 몰려드는 지역 명소인 백운계곡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차로 굽이굽이 걸친 산장 배경의 도로를 15분쯤 오르니 광덕고개로 닿았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화천의 경계 지점인 이곳은 백운산 방향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경기도 시작 구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의 정맥 줄기는 산세를 잃은 지 오래다. 한국전쟁 발발 전에 생긴 군사도로가 지금의 왕복 2차선 포장도로로 이어져 정맥을 가로질러 놓은 탓이다. 정맥 능선이 끊겨 있는 광덕고갯길 양편에는 포천 진입을 알리는 푯말과 강원도를 상징하는 반달가슴곰 형상물이 덩그러니 서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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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은 국토의 뼈대인 백두대간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와 포천 광덕고개에서 파주 장명산에 이르는 경기북부 지역을 관통하는 산줄기다. 한때 경기도 자연환경의 보고(寶庫)로 불릴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개발논리와 무관심 속에서 곳곳이 훼손돼 한북정맥의 현실적 보전 방안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획취재팀

문제는 도로가 생긴 이후 변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도로로 통하면서 광덕고개에는 음식점 등 상업시설을 겸한 쉼터가 들어섰다. 백운산 등산로 초입길에 자리잡은 이 쉼터에는 이따금 등산객들이 오고 갔다.

쉼터 인근 공터는 사유지를 알리는 경고문과 함께 방치돼 있다. 사유지를 빙 둘러싼 2m가량 높이의 회색 철제 펜스는 세월을 머금은듯 곳곳이 붉게 물들었고, 그 주변에는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뒤엉킨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의 손때가 묻거나, 외면 당해 먼지 쌓인 곳이 공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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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포천 광덕고개 쉼터 부근. 철제 펜스로 둘러쳐진 공터가 사유지를 알리는 경고문과 함께 나뭇가지 등이 뒤엉킨 채 방치돼 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경기북부 녹지생태축 한북정맥이 속절없이 앓고 있다. 이는 포천 광덕고개뿐 아니라 파주 장명산까지 160㎞에 이르는 한북정맥 능선 전 구간에 해당하는 얘기다.

한북정맥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분별한 난개발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정맥을 보전하고 관심을 이끌어야 할 산림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문제도 크다.

한북정맥 경기도 끝 능선 구간인 파주 장명산의 훼손도 현재 진행형이다.

장명산은 1990년대 중반 신도시 건설 붐이 일었을 당시, 산의 모래와 자갈이 건설용으로 파헤쳐져 산허리 절반이 이미 뜯겼다. 채석장이 그렇게 쓸모를 다한 현재는 잘려진 절단면을 배경으로 콘크리트 공장이 들어서 있다. 현장에는 덤프트럭이 줄지어 모래바람을 날리며 오갔다.

장명산 아래 마을에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김모(70·파주 오도동)씨는 "선대로부터 이 산이 한북정맥의 줄기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훼손이 시작돼 지금은 이미 파일 대로 다 파인 죽어버린 산"이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이 산을 '단명(短命)'산이라고 부른다"고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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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명산 아래 들어선 콘크리트 공장에 덤프트럭들이 쉼없이 오가고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채석장이 있던 자리였다. 신도시 개발을 위해 산의 모래와 자갈을 파헤친 뒤 쓸모를 잃자 그 자리에 콘크리트 공장이 들어섰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2008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북정맥 훼손실태와 보전방안 연구를 진행한 경기연구원 이양주 선임연구위원은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산줄기인 정맥은 생태계 보고로서의 가치는 물론, 물줄기를 낳고 동네를 형성하는 근본으로 의미가 크다"며 "당시(2008년) 실태 조사 때도 훼손유형과 정도가 심했는데, 그 이후로도 보전 사업 없이 한북정맥의 주요 거점지역은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개발논리 칼날에 도려진 '국토의 뼈대'… 맥 끊긴 한북정맥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1)])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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