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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남이섬 물탱크의 '생존신고' [경기도&미술관·(14)]

입력 2024-07-17 19:03 수정 2024-07-17 19:10

김준의 '숨'


파이프 진동·떨어지는 물소리
소리 채집해 특정 장소 경험토록
'사운드 스케이프' 설치작품

김준 '숨'
김준 作 '숨'. /경기도미술관 제공

사각 구조물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 순간 소리의 울림이 얼굴을 감싼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또 다른 공간으로 감각을 이동시킨다. 물방울이 이따금 똑똑 떨어지고, 아스라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울림이 들리면 눈을 감고 여기가 어디인지 그려본다.

어릴 적 놀던 파이프 미끄럼틀이 떠오를지도, 동굴 탐험을 떠났던 어느 날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그 소리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저마다의 감각으로, 기억으로, 소리가 들려주는 울림을 따라가면 나만의 풍경이 펼쳐진다.

김준 작가의 '숨'은 2014년 장소특정적인 설치작업으로 처음 선보였다. 남이섬의 오래된 물탱크는 과거에 식수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지만 섬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차츰 잊힌 존재가 되었다. 작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가지만, 여전히 섬에서 자리하고 있던 이 존재에 귀를 기울였다.

콘크리트 틈 사이로 떨어지는 물소리, 땅속 벙커와 파이프 사이의 진동소리를 증폭하여 물탱크 주변에 설치하였다. 이 소리는 마치 숨소리처럼 물탱크 주변을 진동하며 섬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여전히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 과거로 잊혀가는 사물이 소리를 통해 살아났다.



경기도미술관의 소장품인 '숨'은 장소특정적 설치를 전시장으로 가져온 설치작품이다. 김준 작가는 특정한 장소에 발생하는 소리를 채집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소리 환경을 만들어 펼쳐 보이는 작업을 한다. 이른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즉 소리로 경험하는 풍경이다.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이용해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과 감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소리는 언제든 존재한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언제든 존재하는 이 소리로 인간의 사회와 풍경을 감각하게 한다. 존재하지만 보지 못한 물탱크나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자기적 파장을 소리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지만 함께 듣던 음악에 어떤 사람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소리로 말을 건다. 우리도 가끔 삶의 순간에 귀 기울여 보자. 어떤 소리가 나에게 들려오고 있는지.

/조민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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