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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희망을 품다]베이비부머 '은퇴 이후의 삶'

권순정 권순정 기자 발행일 2012-09-03 제29면

"힘내 버텨야지~" 창업이냐 취업이냐 꼼꼼한 준비 재출발
자식·노부모 부양 험난한 낀세대
'100세 시대' 10억은 필요한데… 벌써 연간 30만~40만명씩 집단퇴직
대부분 자영업 뛰어들지만… 3분의 1은 준비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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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재취업과 은퇴 후의 삶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후 출산율이 급증한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자 1997년 IMF 외환위기때 혹독한 시련을 맛본 베이비부머는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겪으며 살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도 자녀에 대한 결혼과 부모의 봉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 베이비부머들은 은퇴후 어떻게 삶을 맞이해야 좋을지 알아본다.

# 준비되지 않은 은퇴

4달전 중견 건설회사에서 명예퇴직한 김모(53)씨.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쓰러질 뻔한 회사를 살린 주역이었던 그도 은퇴 시기에 접어들자 회사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써야 했다. 그는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고3 수험생인 아들과 대학생 딸을 키우며 팔순인 노모까지 모시고 있어 당장의 생계문제가 시급해 보였다. 김씨는 "이제 퇴직금만으로 버텨야 하는데 창업을 할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지 고민"이라며 "아들 딸 대학 공부도 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앞으로 돈 나올 구멍은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들은 지난 2010년부터 만 55세를 맞아 정년이 빠른 대기업부터 집단 퇴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앞으로 매년 30만~40만명씩 은퇴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 베이비부머 인구수는 약 695만명으로 전체 인구(4천799만명)의 14.5%를 차지한다. 베이비부머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경기도가 157만명(22.6%)으로 가장 많고, 서울 140만명(20.1%), 부산 56만명(8.0%), 경남 46만명(6.6%) 순으로 집계됐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이 노년에도 여가 등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월 225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는 자녀 결혼 비용과 같은 일시적인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직장 은퇴후 노후자금으로 5억4천만원은 있어야 안락한 삶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은퇴후 50년동안 살아가려면 약 1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월소득이 가능한 비율은 전체 은퇴 인구의 10% 내외에 불과하다.



# 험난한 새출발

성남에 사는 박모(55)씨는 3년 전 대기업 전자회사를 그만 두고 프랜차이즈 사업자를 통해 피자집을 창업했다. 하지만 박씨 가게 주변에 피자집은 물론 치킨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출혈경쟁을 해야 했다. 급기야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아내는 피자를 만들고 자신은 배달을 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대학생인 외동딸도 틈틈이 배달을 도왔다. 박씨 부부는 지난 3년간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쉴새 없이 일했지만, 가게 임대료와 본사 납입금, 재료비 등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어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결국 박씨는 지난 6월 가게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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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도내 자영업자 수는 148만6천명으로 올해초에 비해 8만8천명이 증가했다. 특히 도내 자영업 비중은 전체 직업의 24.7%로 OECD 평균 15.9%보다 1.6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 중 46.6%가 3개월 미만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장에 진입하는 바람에 새로 진입한 자영업자 중 3분의 1이 1년 이내에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 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재취업 전선에 뛰어든 베이비부머들의 현실도 팍팍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구인정보 중 10년 이상의 경력직을 채용하는 비중은 전체의 3.9%, 50대 이상을 채용하고자 하는 중소기업의 비중은 9.0%에 불과하다. 설사 재취업을 하더라도 아파트 경비, 대리운전기사, 서비스업 등 단순 노무직이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해 일자리의 질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주로 젊은층이 주로 일하던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중·장년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자리의 질이 보장되지 않아 가계 수입도 은퇴 이전보다 급격하게 감소했다.

# 은퇴후의 삶을 위하여

베이비부머들의 재취업에 대해 한 취업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우선 실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의기소침해지는데,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어야 합리적인 판단과 체계적인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의 경력사항, 강점과 지인, 동창들의 연락처 등을 정리한 노트를 만들고 구직 과정을 기록하는 취업일기를 작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취업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주변에 자신이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하며, 과거의 경력은 빨리 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면이나 보수보다는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경력자 채용은 소규모 수시채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평소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며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www.work.go.kr)은 취업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중견 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www.projob.or.kr)는 10년 이상 관리직이나 전문직 경력자의 구인구직을 알선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나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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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이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력뿐 아니라 인간관계망, 여가, 봉사 등에 대한 준비도 꼭 필요하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 12일 발표한 '은퇴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TV시청이 하루 4시간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은 가사활동이 4시간 이상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연령대별로 보면 50대는 남녀 모두 40% 이상이 사교형으로 교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60대 남성은 '카우치 포테이토형(앉아서 감자칩을 먹으며 TV시청을 하는 사람)'으로 주로 TV를 봤다. 또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한 번이라도 공연·전시·극장·스포츠 관람 경험이 있는 60~64세가 14.4%, 65세 이상에선 11.4%에 불과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은퇴 이후 가족·취미·건강·사회활동 등으로 여가에 대한 '행복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며 "TV 시청이나 잡담, 산책 등과 같은 소모적 여가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사회적으로 교류를 늘릴 수 있는 여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문화센터 등에서 강좌를 청취하고, 그림·도예·춤·공예 활동 등 샐러리맨 시대에 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꿈과 관심을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또 "지역 동호회에 가입해 지역 봉사활동을 수행하거나 국제 자원봉사활동, 국제 자연보호활동에 참가해 보는 것도 여가 생활은 물론 자기계발과 재취업을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순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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