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배신한 신라가
전략적으로 쌓은 城
한강 이남·중국과 교통요지 가치도 무시못해
오늘날에는 시민 휴식공간 탈바꿈
무너진 성벽·기와 조각 ‘흔적’
어느덧 산에 꽃이 피기 시작하네요.
매섭고 찬 겨울이 지나더니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한 송이 두 송이 예쁜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한, 올해 겨우 20살의 앳된 신라 병사는 오늘도 성태산성 성곽위에 올라 멀리 서해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서기 560년. 당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을 잃은 백제가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유역을 빼앗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어요.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힘을 합쳐 한강 상류지역의 10여 군을 빼앗는 등 고구려와 힘든 전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550년 3월 고구려가 백제의 땅을 빼앗을 때, 진흥왕은 백제와 힘을 합쳐 고구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군사들이 지친 틈을 타서 이사부장군에게 명령하여 두 나라의 군사를 무찌르게 합니다. 신라가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백제를 공격한 것이죠. 백제는 믿었던 신라에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이후 신라는 한강 이남지역의 백제 땅을 빼앗아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특히 남양만에 당성을 쌓아 바다를 통하여 직접 중국의 남북조와 외교관계를 맺게 된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처럼 삼국시대 안산지역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수많은 전쟁을 치른 전략적 요충지이며, 중국과 교류를 하기 위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략적 차원의 중요성 때문에 신라가 안산에 쌓은 산성이 바로 성태산성입니다.
요즈음 성태산성 성터는 많은 시민들이 등산과 함께 다양하게 구비된 운동기구들로 휴식과 활력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눈여겨 둘러보면 정상부근에서 무너진 성벽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고, 정상부근의 바닥에서는 기와 조각, 토기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우리 마을 뒷산에 있는 성태산성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운 전쟁의 최전선이었어요. 세 나라 군사들이 외치는 함성, 칼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 화살 퍼붓는 소리 . 그렇지만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밤하늘과 맞닿은 높은 망루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와 가족들을 그리며 한숨짓는 신라 병사는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요? 그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빨리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
관련기사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