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묘 근처 명복 빌기위해 건립
▲ 정조와 장헌세자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부흥고 제공 |
절에는 없는 홍살문·부모은중경탑 등
정조대왕 효심깃든 흔적 곳곳에 자리
첫째, 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 둘째, 해산함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아홉째, 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하신 은혜. 열째, 임종 때도 자식 위해 근심하신 은혜.
어디서 볼 수 있는 글귀일까요? 효(孝)를 중요한 가치로 가르쳤던 성균관이나 향교의 한쪽 벽면에 새겨놓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를 강조한 불경, ‘부모은중경’ 의 일부랍니다.
경기도 화성 융·건릉 근처에 있는 용주사의 부모은중경탑(1981)에 새겨진 글귀이지요.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절은 없겠지만 용주사에는 정조의 효심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다른 절과는 달리 홍살문이 여러분들을 맞이합니다. 붉게 칠한 두 기둥을 세우고 그 두 기둥을 서로 연결한 보 위에 나무살을 촘촘히 세워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처음 이곳에 온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절 입구의 홍살문은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요.
홍살문은 대개 왕실의 능이나 묘, 그리고 관청 앞에 높이 세워서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였지요. 때로는 백성들에게 효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효자나 효부의 집 앞에 세우기도 했답니다. 그렇다면 용주사에는 왜 홍살문을 세웠을까요?
용주사는 1789년,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장조)의 묘인 현륭원을 양주에서 화산(화성)으로 옮긴 이듬해에 세운 절이었답니다. 현륭원에서 가까운 이 곳에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었지요. 그런데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절을 세우다니요.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아무리 국왕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답니다.
그래서 병자호란 때 소실된 갈양사를 복원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 터 위에 다시 세웠지요. 그리고는 대웅보전 옆 ‘호성전’에 장헌세자의 위패를 모셔놓았답니다. 지금은 융·건릉에 잠들어 있는 장헌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답니다.
부모은중경탑은 바로 그 앞에 있답니다. 또 홍살문 근처에 있는 효행 박물관에는 정조의 명을 받들어 만든 ‘불설부모은중경판’(보물 제1754호)이 보관되어 있답니다. 이처럼 용주사는 정조의 효심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이랍니다.
용주사에서는 역사 속 인물을 또 한명 만날 수 있답니다. 정조가 아꼈던 화가, 김홍도입니다. 당시 도화서 소속 화원이자 정조의 신하였지요.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 이 곳에도 여러 점 있답니다. 화풍이 달라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으니 잘 찾아보세요.
효행 박물관에 보관중인 불설부모은중경판에 새겨진 그림과 사곡병풍이 김홍도의 작품이랍니다. 또 서양화처럼 원근법과 음영법으로 표현한 ‘대웅보전삼세불탱화’ 제작에도 참여하였지요.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 정조의 꿈 때문에 이름 붙여진 절, ‘용주사’. 곳곳에 장헌세자와 정조에 얽힌 이야기들이 숨어 있답니다.
또 삼문을 두고 천보루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등 양반 사대부의 집이나 궁궐 건축 양식을 적용한 것도 이 절의 특징이지요. 절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는 길, 들어갈 때 보았던 홍살문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이제는 이 절에 홍살문이 세워진 이유를 알 수 있겠죠?
/김효중 부흥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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