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4]# 춤추는 # 사하라의 노마드들 -모로코 편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24 제9면

사하라 모래언덕 구르는 웃음소리, '1달러의 서글픈 악취'에 묻혀… 한낱 迷夢인가

20171022010010885000532411

모래산 오르다 허리 다쳐 베두인 가족 천막에 불시착 '나를 위한 즉석 파티'
사막의 바람을 몸에 두르고 팔짝팔짝… 불행·슬픔 따위 단어가 있을까?

페스의 무두공장 열다섯 안팎 소년들 사진 찍어 달라며 '헤이, 헤이!'
아이들에 새겨진 주홍글씨·감독의 야비한 눈빛… 구토 유발 '잔인한 현실'

2017102201001088500053242
*무두공장의 아이들

그날은 사막투어를 마친 메르조가에서 지프로 9시간을 달려 페스에 도착했고, 신시가지보다는 성 안쪽 메디나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한 건 중세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였다. 며칠 씻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짐을 부려 놓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 한바탕 물과 씨름을 했다.



12-DSC03648
사하라 사막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

사막에서 따라온 황색모래와 먼지들이 물에 씻겨 욕조바닥에 쌓였다가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무거운 머리와 고단했던 몸은 여행 첫날처럼 맑아져 새로운 힘이 서서히 몸으로 깃드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고마운 회복인가.

20-DSC04709
수많은 구덩이가 있는 무두공장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

다음 날 나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무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열다섯 안팎 되어 보이는 너댓 명의 아이들이 '헤이, 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르기에 기다리면 차례가 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바로 앞에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 파란 통 속의 가죽을 문지르고 꺼내는 작업을 지켜보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힘든 무두질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늙은 노파였다.

22-DSC05297-1
지독한 악취가 나는 구덩이(피트). /김인자 시인 제공

딱 한 번 노인과 눈이 마주쳐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노인은 무표정하게 통속으로 얼굴을 처박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의 굽은 등이 내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튼튼한 내 하체를 후들거리게 했다. 


노인을 보고 돌아서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악취 중 가장 지독한 악취가 무두공장의 악취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구덩이(피트 pit)에 색깔별로 가죽을 옮겨 담고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고 발로 밟는다.

한 번 무두공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나갈 수 없다던 야비한 눈빛을 가진 감독에게 은근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눈을 부릅뜬 현실이 아니던가.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거나 청소 일을 하는 사람을 불가촉천민이라지만, 페스 테너리(무두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성년이 되기도 전 불가촉천민 그 이하의 신분을 주홍글씨처럼 새기며 산다고 한다.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15-DSC05289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늘 웃는다. 하루치 빵을 위해 1달러를 위해. /김인자 시인 제공

아이들은 감독의 눈에 들면 하루 1달러 정도를 받는다는데 주로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으며 주는 팁조차도 감독이 착복하고 일부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했다. 대체 누가 저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무두공장으로 등을 떠밀었을까.

17-DSC05261
무두장이 노인. /김인자 시인 제공

나는 테너리에서 아이들과 이야기 하느라 온갖 짐승의 살갗이 썩는 악취에 1시간 정도 노출되었을 뿐인데 몸이 이상증세를 보였다.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놋쇠 키로 문을 열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변기에 얼굴을 박고 토하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한 가래 같은 건더기들이 창자를 훑고 나와 변기 속 하수구로 흘러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내 몸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겨를이 내겐 없었다. 세 번째 무두공장을 찾아간 후였다.

3-DSC04351-2
온가족이 춤을 추자 작은 아이가 천막 안에서 북을 가지고 나와 두드렸다. /김인자 시인 제공

*어린왕자가 있는 사막

해질 무렵 나는 노을을 등에 업고 무함마드가 이끄는 낙타를 타고 사하라사막 깊숙이 들어갔다. 지상에 오직 하늘과 모래 뿐인 사하라에 서보는 것,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자를 위한 천막 숙소에는 베두인가족이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그 중 넷은 아이였다.

그날 밤 나는 황홀경을 주체할 수 없어 모래산을 오르다 허리가 삐끗하는 바람에 불시착한 어린왕자처럼 사막에 주저앉고 말았다.

19-DSC04849
페스 골목 풍경. /김인자 시인 제공

9-DSC033272
사하라 사막 가는 길, 여행자들을 위한 현지 아이들의 즉석 연주. /김인자 시인 제공
다음날 함께 밤을 보낸 여행자들은 이른 아침 서둘러 호숫가 캠프로 돌아가고 나는 태양을 피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천막 그늘에 앉아 있었다. 한낮 온도계 눈금이 60℃에 접근하자 드디어 사막다운 사막에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빈 모래사막에 둥둥둥 북이 울렸다. 아픈 내가 우울해 보였는지 천막청소를 하러온 그녀가 일을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즉석에서 벌어진 파티였다. 작은 아이가 엄마를 따라 몸을 움직이며 두 팔을 벌려 내 주위를 빙빙 돌고, 둘째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익숙한 몸짓으로 북을 두드렸다.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던 큰 딸은 설거지를 하다말고 끼어들고, 어린왕자를 연상하게 하는 막내는 하늘에 닿을 듯 겅중겅중 뛰며 기분이 좋아보였다.

4-SC03998
가축들에게 남은 음식을 주는 베두인 소녀. /김인자 시인 제공

저 노마드들에게 '불행' '우울' '슬픔' 따위의 단어가 있기나 할까 싶은 아침, 그들의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에 퍼지고, 아이들은 사막의 바람을 몸에 두르고 팔짝팔짝 뛰고 굴렀다. 흩어져 있던 고양이가족들이 모여들고 염소와 노새도 춤판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렸다.

어느새 그들을 따라 나도 신바람이 나서 손뼉으로 추임새를 넣다가 아픈 허리를 부여안고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을 때 수줍어서 도무지 곁을 주지 않던 막내도 드디어 내 품에 안겨왔다. 까만 볼이 홍당무가 된 녀석의 뺨을 살며시 보듬어 주었다. 평화로웠다.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랴!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