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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5]# 아이들은 # 죄가 없다 -인도편

경인일보 발행일 2017-10-31 제9면

가난 팔아 꽃을 사는 '꽃이 神' 인 나라
속여도, 속아도, 어쩌랴… 또 그리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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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샌드위치 팔던 청년 "상한 빵이 어때서?"… 군침 흘리는 아이들에겐 먹고 탈 나도 사치
하우라역 10살 소년에 배낭 맡기고 "아차!"… 안도감·죄책감 뒤로 "밀, 의심한거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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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라 새벽 꽃시장의 이모저모(저 모든 꽃은 신에게 바쳐질 제물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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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라 꽃시장

그늘이 있으면 빛이 있겠지. 세상의 금잔화를 다 모아놓은 듯한 하우라 꽃시장에선 행복만을 떠올렸다. 지상에 인도인보다 꽃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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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라 새벽 꽃시장의 이모저모(저 모든 꽃은 신에게 바쳐질 제물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

인도에선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듯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이다. 신을 위해서라면 가난을 팔아서라도 기어이 꽃을 산다. 인도에서는 꽃이 신(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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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 산이 보이는 다질링 마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인도의 가난

샌드위치 한 조각을 들고 인도의 어느 오후를 추억하고 있다. 기온은 40℃에 육박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우기였으며 무갈사라이 역에서였다. 하우라역을 출발한 기차가 인도 최북단 역 쉼라까지는 20시간 이상 남았고 나는 배가 고팠다.

안내방송도 없이 기차는 섰고, 사람들은 우루루 차 밖으로 나가 먹을거리를 사느라 분주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기차에서 내렸는데 눈에 들어온 건 청년이 파는 샌드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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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나는 샌드위치 두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깥바람을 조금 쐬고 자리로 돌아와 포장을 열자 확 달려드는 곰팡이 냄새. 알록달록해야할 속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후다닥 기차에서 내려 빵장수를 찾아갔다. 상한 빵을 팔면 어쩌냐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청년은 딴청을 피며 '이 빵이 어때서?' 하는 표정으로 시간을 끌었다. 주변에는 금세 아이들이 몰려와 까만 눈망울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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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기차는 출발신호를 알리는데 빵장수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해 억울했지만 어쩌랴, 문제의 샌드위치를 빵장수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지려던 바로 그때, 한 소년이 풋볼선수가 공중으로 날아 공을 낚아채듯 몸을 날려 내 손에 든 샌드위치를 빼앗아 바람처럼 달아났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달려가 빼앗을 수도 없는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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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생긴 그들의 가난,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기차가 곧 떠나리라는 걸 빵장수가 알고 있듯 아이들은 누가 그 빵을 사든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빵을 포기함으로써 한 아이는 먹을거리를 얻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어쩔 것인가.

그 빵을 먹고 탈이라도 난다면 하는 생각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사치였다. 다만 침을 삼키며 놓친 빵을 아쉬워하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던 감정들,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샌드위치를 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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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질링 마을의 아이. /김인자 시인 제공

샌드위치만 보면 그때의 눈망울이 떠오르고 곰팡이 냄새가 솔솔나는 그 칙칙하고 습했던 인도기차역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무그늘에 앉아 커피를 곁들여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이거 다 인도가 그립고 여행 가고 싶은 가을바람의 유혹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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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을 지켜준 소년 밀. /김인자 시인 제공

*밀, 미안해

나 홀로 여행자의 애로점 중 하나는 볼일이 급하거나 물 한 병이 필요해도 큰 배낭을 내 몸처럼 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28시간의 기차여행을 마치고 하우라역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우르르 역을 빠져나간 뒤 머리를 식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화장실이 급했다.

때마침 빈병을 줍는 아이들이 대여섯 있었는데 그 무리에서 제일 작은 아이는 10살쯤 된 소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차가 떠난 철로에서 빈병을 줍거나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10루피를 외치기 바쁜데 녀석은 달랐다. 이 방면에 초보인 것이 분명했다.

"왜요? 도움이 필요한가요?"

녀석의 눈빛이 내 시선을 관통했다.

"이름이?" ...

"밀이에요, 밀,"

"밀, 나 화장실이 급한데 배낭 좀 봐줄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했던 터라 밀에게 배낭을 맡기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일어나려던 그때 내 뒤통수를 내리치던 생각, 아차,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그곳이 인도라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허겁지겁 배낭이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머릿속은 배낭과 밀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불안은 급물살을 탔지만, 상상이 기우이기를 바라는 맘도 그 못지않았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역사 기둥을 돌아서자 저만치 밀이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때 나를 엄습하던 안도감과 죄책감, 내 배낭을 지키느라 빈병 줍는 시간을 빼앗겼지만 불평은커녕 행복한 미소를 넘치도록 안겨주던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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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닌 게 없는 나라 인도, 인도에선 낙타에게도 꽃장식을 한다. 낙타를 타고 즐거워하는 인도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밀과 나는 서로 공평한 존재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린 서로 생각이 달랐던 것,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서둘러 밀과 밀의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는데 낯이 화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밀, 착한 널 의심한 거 정말정말 미안해!"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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