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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얼굴·(5)]동인천 양키시장 터줏대감 신현성 할아버지'

김태양 김태양 기자 발행일 2019-04-02 제1면

수북이 쌓인 실처럼 늘어난 주름'… 50년 넘게 시장 지켜온 양복장인

인천의얼굴 신현성양키시장양복점9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물건 팔던 곳
교복·교련복 등 만들며 5남매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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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다던 동인천 양키시장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930년대 생겨난 인천에서는 가장 오래된 종합시장이지요. 신현성(80) 할아버지는 몇 안 남은 양키시장 지킴이입니다. 50년이 넘었습니다.

양키시장은 그 이름처럼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온갖 것들을 팔았습니다. 인천과 미군, 참으로 질긴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신미양요 때부터 치면 미군의 인천상륙작전만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인천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했던 1년여를 제외하고는 줄곧 인천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네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겠습니까. 그 산증인이 할아버지입니다. 저기 할아버지 뒤에 쌓인 실패 더미가 그 삶의 두께를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는 군대 제대 후 작업복 만드는 가게에 취직해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양키시장에서 세를 얻어 양복점을 시작했습니다. 학생 교복·교련복, 근로자 작업복 등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찾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통금 시간 직전인 밤 11시 50분에 닫았습니다. 한 달에 딱 한 번 쉬었습니다. 일이 밀려 가게에서 쪽잠을 자는 날도 부지기수였습니다.

3~4년 만에 3평짜리 점포를 샀습니다. 그렇게 5남매를 키웠습니다. 끊이지 않을 것 같던 손님,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합니다.

세를 내는 것도 아니고 해서 문을 열고는 있는데 손님 한 명 구경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을 만나는 법, 이게 인생인가 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교련복! 이게 무엇인지 아는 분은 제법 나이가 드신 겁니다. 하하하!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의 얼굴'을 찾습니다. 평범하지만 인천을 지탱하는 든든한 얼굴이라고 생각하시는 이가 있다면 문을 두드려 주세요. 굳이 얼굴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천을 상징하는 손이나 발, 어느 것이어도 됩니다. 모두가 '인천의 얼굴'이 될 수 있습니다.(032)861-3200 이메일 : sa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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