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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도시재생의 길] 쇠퇴 원도심 부천 소사… 경기도 유일 도시재생 사업 완료

김대현·배재흥·손성배 김대현·배재흥·손성배 기자 발행일 2021-06-28 제2면

중동신도시에 밀려나… '부천 1번지의 향수'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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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지하철 1호선 부천역과 소사역의 중간 지점인 소사본동 경인로에 시인 정지용이 평상에 앉아 있는 조형물이 놓여있다. 시인 정지용은 해방 전후 소사삼거리에 살았다. '성주산을 품은 주민이 행복한 소사마을' 도시재생은 마을이 가진 문화·자연 자원을 활용해 원도심의 활기를 되찾고자 했다. 소사는 경기도 최초로 도시재생 사업을 마무리한 곳이다. /기획취재팀·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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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이전에 소사가 있었다. 원도심 소사는 도시 성장의 밀알 역할을 다한 뒤 쇠락의 길을 걸었다. 뉴타운 사업 지정은 활력을 잃은 소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해제 이후 계획 없이 난립한 신축 다가구주택은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렸다.

도시재생으로 변화를 꿈꿨다. 부천시는 2016년 도시재생 사업 공모에 소사본동 일원(근린재생형)과 춘의동(경제기반형)을 신청해 2개소 모두 선정됐다. 소사마을은 지난 2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도시재생 사업을 끝낸 곳이다. 첫 단추를 끼운 만큼 관심이 쏠렸다. 도시재생, 과연 마을을 바꿀 수 있을까. 

 

행정구역은 경기·전화번호는 '인천 032'
경인선 철도역 부천 있기 전부터 자리잡아 


# 부천의 발원지 '소사'

부천은 부평과 인천의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지명이다. 지명 유래에서 볼 수 있듯이 부천은 경기도지만, 오히려 생활권은 인천과 가깝다. '032' 지역 번호만 봐도 그렇다.



소사는 부천의 중심이었다. 부천이 있기 전에 소사가 먼저 있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철도역의 이름은 소사였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소사읍은 그대로 시로 격상됐다. 소사가 부천시의 발원지로 꼽히는 이유다.

토박이말로는 '소새'라고 불렀다. 풀이를 해보면 동쪽에 있는 높은 산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동쪽을 바라보면 해발 151.9m 높이의 할미산이 보인다. 여전히 마을 어른들은 소사라는 지명을 어색해 하며 소새, 소새울이라고 부른다. 소사는 한자로 쓰고 쓴 대로 부르다 보니 굳어졌다고 한다.

소사는 1988년 중동신도시 건설로 행정, 상업, 교통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낡은 공간을 그대로 두고 새로 탄생한 계획도시로 부천의 중심이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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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부천 소사본동 일원. /기획취재팀

노후 건축물 절반 넘고 범죄발생률 높아

# 소사의 쇠퇴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소사는 낡았다. 도시의 쇠락은 21세기 들어 극명해졌다. 인구 감소와 함께 지역 자립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사업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소사본동과 소사3동 일부 집계구(통·반 단위) 인구는 2000년 3만6천196명에서 2010년 3만1천933명으로 줄었다. 사업체 수는 2000년 2천300개에서 2012년 2천98개로 줄었다.

곳곳에 낡은 건물이 산재해 있다. 20년 이상 경과한 노후건축물은 전체 5천906동 중 3천327동으로 절반을 넘겼다. 슬럼화로 인해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이라는 오명도 썼다. 소사구에서 발생한 범죄 10건 중 3건이 집계구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쇠퇴를 부추긴 주된 요인은 뉴타운 지정과 해제다. '소사 뉴타운'은 지난 2007년 3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 2020년을 목표로 249만7천㎡에 총 3만5천690가구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2014년 7월 백지화됐다. 뉴타운으로 묶인 7년은 소사 주민들에게 오롯이 잃어버린 암흑기였다.

뉴타운 해제 이후 신축 다가구주택이 들어서면서 재개발 방식의 사업이 전보다 어려워졌다. 부천시는 방치된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2016년 도시재생 일반사업에 공모를 신청해 선정됐다. 국비 50억원과 시비 5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사업명은 '성주산을 품은 주민이 행복한 소사마을'이다. 재생 구역은 성주산을 등지고 지하철 1호선 소사역과 서해선 소새울역 사이의 저층 주거밀집지로 소사본동과 소사3동 일원이다.

시인 정지용의 숨결 불어넣은 '향수길'
'소사 [ ] 공간' 공동체 거점으로 활용

"사업비 비해 경제적 도움은 크지 않아"

# 소사마을 도시재생의 발자취

정무진(69)씨는 소사 도시재생 주민·상인협의체 위원장을 맡아 마을 재생사업을 이끌었다. 40년 전인 1980년 초반 서른 즈음, 소사삼거리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정씨는 화원(花園)을 운영하며 청·장년기를 넘어 노년기까지 보내고 있다. 그의 시선으로 소사마을 도시재생 사업을 따라가 봤다.

소사마을 도시재생의 자랑은 '길'이다. 평범했던 골목길이 마을특화 가로로 재탄생했다. 사업비 중 절반 이상인 52억원을 가로조성 사업에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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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업으로 새로 닦은 성주산 가족산책로 입구에 설치된 시인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의 조형물. /기획취재팀·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정지용 향수길(성주산 가족산책로)이다. 정지용은 1945년 전후 약 3년간 소사삼거리에 살았다. 도시재생은 서울신학대학교와 부원초등학교, 성주산생활체육공원 일대를 잇는 1.2㎞의 길 곳곳에 시인 정지용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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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의 고향은 충북 옥천군이다. 그가 객지 생활을 하던 부천 소사의 서울신학대 옹벽에 그의 대표작 '고향'의 시구를 담은 조명 시설이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고 있다. /기획취재팀·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아파트 주민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공동체 공간이 생겼다. 옛 소사본2동 청사가 도서관과 강의실을 둔 디딤돌문화센터로, 소사본3동 청사는 헬스장, 에어로빅실, 공연장 등으로 꾸민 소새울문화체육센터로 새단장했다.

낡은 단층짜리 점포를 허물고 조성한 예술창작소 '소사 [ ] 공간'은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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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거점시설로 건립된 예술창작소 '소사 [ ] 공간'. /기획취재팀·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정씨에게 도시재생은 '애증'이다. 도시재생 사업이 소사마을에 옛 영광을 되찾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과 사업의 체감도가 낮은 것은 아쉬웠다.

정씨는 "잊힌 우리 지역의 향토를 계승하고 되살려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마을에 투입된 사업비에 비해서 실제 경제적인 도움은 크게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차장, 배재흥, 손성배기자
사진 :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동철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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