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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의 역사/ 세계의 지배자 몽골에 맞서다

신대광 기자 발행일 2015-08-25 제18면

무자비한 침탈에 저항
지역 곳곳 스스로 궐기

무신집권자 강화도서 백성고통 외면
대몽항쟁 기록 상당수 ‘민초’의 싸움


고려 시대는 유난히도 외침이 많았습니다. 침략에 맞서 저항했던 지배층도 힘들었겠지만, 이민족의 침략에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당한 것은 아무래도 민중들일 것입니다.

고려 시대는 북방 여러 민족이 우리나라를 괴롭혔답니다. 초기 거란(요)과 여진(금)이 고려에 피해를 주더니, 13세기 몽골(원)에 이어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이 이어졌으니 고려 민중들은 수많은 전쟁 속에 살았다고 할 수 있겠죠?

몽골은 원래 금나라의 세력 아래 있었는데, 테무친이 나타나 부족을 통일하고 1206년에 칸(汗)에 올라 사방으로 정복 활동을 펼친 후 칭기즈칸(成吉思汗)에 오릅니다.



이후 계속된 영토 확장으로 고려와도 충돌하게 되는데, 1231년(고종 18년) 몽골 1차 침입이 있었던 후 1254년(고종 41년) 6차 침입까지 약 30여 년간 온 국토를 전쟁의 고통으로 물들이게 됩니다.

안산지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당하지만 않고 몽골에 맞서 싸운 기록을 찾아볼 수 있어요. 1256년(고종 43년) 대부도 별초가 몽골 군사 100여 명을 인천 소래산 아래에서 격파했답니다.

「경진(庚辰)에 대부도(大府島 ; 남양) 별초(別抄)가 밤에 인주(仁州 ; 인천) 근처의 소래산(蘇來山) 아래에 나아가 몽골 병사 1백여 인을 격파하여 도망가게 했다」- 『高麗史』 권 24. 세가 24 고종 43년 4월

소래산은 현재 시흥시와 인천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입니다. 이 산 아래에서 안산 대부도에 있던 별초 부대가 몽골 군사를 패퇴시켰다는 것은, 그 숫자로 보아 그들이 몽골의 주력 부대는 아니라 할지라도 외적 침략에 대해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민초들이 끝까지 저항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개경에서의 봉기 소식이 전해지자 안산 대부도 주민들도 궐기해 몽골인 6명을 살해했습니다. 이 또한 안산 지역민들의 침략군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집권자인 최우와 무신들은 강화도에 있었기에 내륙에서의 전투는 미약하고 조직적이지 못했습니다. 무신집권자들은 내륙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에게는 무심한 채 강화도로 세금을 걷어가는 등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했답니다.

이 때문에 민중들은 몽골의 무자비한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리하여 백성들은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몽골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몽골에 저항했던 당시 대몽 기록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백성들과 초적, 노비와 같은 천민들과 관련된 기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산지역에서 벌어진 몽골에 대한 저항의 역사는 ‘역사 교과서’에 실릴 만한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주목을 받는 중앙의 백성이 아닐지라도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죽음에 맞서 싸운 처절한 이 싸움은 바로 우리 지역,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합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편히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집권자들이 신경 써야 할 몫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나라에 대한 마음이 등불에 비친 듯 나타날 것입니다.

/신대광 원일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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