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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 탄생… 최현 초대 위원장

정운 정운 기자 발행일 2021-06-16 제14면

"피곤에 찌든 조종사, 무리한 비행은 국민생명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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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기 조종사 70% 정도가 소속된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이 탄생했다. 국내 조종사들의 목소리를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최현(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 조종사 노조 연맹 위원장은 '항공 안전'과 '조종사 권익'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클릭아트코리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 합류하지 않은 항공사와 현안 공유
파업이전 월간 근로시간은 상상 초월 지금도 근로기준법 보장 안돼
年 1천시간 비행금지 소극적 규정 '적정 비행시간'으로 변경 논의를
노동3권 제한은 헌법에 위배… 조합원 의견 토대로 정책 결정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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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항공기 조종사들의 권익 향상과 결집을 위한 단체가 출범했다. 전국 6천여 명의 조종사 중 4천500여 명이 소속된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이하 조종사 연맹)이 지난달 탄생했다.

지난해 1월부터 국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등이 모여 조종사 연맹 설립을 논의했고, 그 결실이 최근 맺어졌다.



조종사 연맹 초대 위원장은 최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이 맡았다. 최현 위원장은 "연맹의 목적은 항공 안전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는 조종사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필요하면 전체 조종사들의 단결을 이끌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종사 연맹에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등 4개 항공사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는 12개 항공사가 있는데, 이 중 조종사 노조가 설립되지 않은 항공사도 있다.

조종사 연맹은 아직 연맹에 합류하지 않은 각 항공사 조종사들과도 현안 등을 공유하고 있으며, 향후 이들이 연맹 활동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적인 형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구성원이 항공기 조종사들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현 위원장은 의사 결정과 정책 결정·집행 과정이 조종사들의 의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맹이나 상급단체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Top-down'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조종사 연맹은 기업별 노조나 조합원 의견을 토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Bottom-up'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사 연맹 출범은 전국의 조종사가 더욱 수월하게 한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가 된 만큼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현 위원장은 '항공 안전'과 '조종사 권익'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산업이 항공산업이다. 조종사들도 피해갈 순 없었다.

그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조종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며 "항공사는 화물 운임 상승으로 도움이 됐으나, 조종사들은 지정 숙소 외에는 외출이 금지되는 등 열악한 체류 환경을 감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줄어든 월급과 열악한 체류 환경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비행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며 "변화무쌍한 날씨에서 390t, 시속 800㎞의 항공기를 안전하게 이착륙하는 비행은 자신감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비행 경험이 현저하게 줄었고 이는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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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들의 '피로'는 안전과 직결된다. 정부는 한 조종사가 연간 1천 시간 이상 비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은 1~2시간 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조종사나 10시간 이상 장거리를 운항하는 조종사 모두에게 적용된다.

조종사 연맹은 상한선으로 '운항 가능 최대 비행시간'을 규정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노선 거리와 피로도 등을 고려한 '적정 비행시간' 방식으로의 변경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현 위원장은 "수백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조종사들이 최적의 상태에서 운항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항공기 조종사 등 항공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 3권'이 제한돼 있다. 2008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항공산업을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로 규정해 쟁의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최현 위원장은 "(노동 3권 제한은)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에는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며 "'필수공익사업'이라고 해서 단체행동권을 일방적으로 제한한 것은 노동자들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현격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현 위원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필수공익사업'의 허구가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될 당시 운항 노선을 감축하면 국민 생활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가 컸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항공사들은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운항하던 노선을 감축했다.

그는 "조종사들의 쟁의 행위로 운항이 차질을 빚으면 국민 생활에 피해를 주는 것이고, 항공사들이 경제적 논리로 운항을 축소하면 국민 생활에는 피해가 없는 것이냐"며 "필수공익사업 지정의 모순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최현 위원장은 필수공익사업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종사 연맹은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된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이라며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인터뷰- 최현 대한민국 조종사 노조 위원장

국내 항공산업은 코로나19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현 위원장은 항공산업 발전과 항공 안전을 위해 '조종사', '항공사', '법령 체계', '국민적 공감' 등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가 하나의 날개와 한쪽의 엔진만으로 날 수 없듯, 4개 요소는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조종사는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고객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지식과 역량을 쌓아야 한다"며 "항공사는 고객에게 더 편한 여행 일정을 제공하면서, 1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법령 체계를 통해 항공 사고가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를 공고히 하고 감시해야 한다. 위반사항이 발생했을 땐 과감히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조종사 연맹은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활동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조종사 노조를 두고 '귀족 노조'라는 인식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1억원 안팎의 연봉이 부각되면서 생긴 인식으로, 2000년 국적 항공사 파업 때 퍼졌다고 한다.

최현 위원장은 "2000년 파업 이전 조종사들의 월간 근로 시간은 상상을 초월했고, 지금도 근로기준법에 있는 4시간 근무에 30분 휴식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조종사들은 비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밤샘 근무를 해야 하고, 비행시간에 형언할 수 없는 집중력을 쏟아내야 한다는 점을 알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조종사들도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피곤에 찌든 조종사, 비행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제한 사항조차 지켜지지 않는 무리한 비행은 국민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고, 조종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정운기자 jw33@kyeongin.com

■ 최현 위원장은?

-1966년생

-한국항공대학교 운항학과 졸업

-공군 전투조종사로 11년간 복무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 이사(2016~2017)

-대한항공 조종사 새 노동조합 제2기 사무총장(2015~2016)

-대한항공 조종사 새 노동조합 제3·4기 위원장(2017~2020)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통합 1기 위원장(2020~)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 위원장(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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