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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11일 장보고기지 향하는 홍상범 극지연구소 월동연구대장

한달수
한달수 기자 dal@kyeongin.com
입력 2023-10-31 20:39 수정 2024-02-05 18:33

"강풍·영하 40도 극한 추위도, 24시간 어두운 흑야도… 모두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6111
홍상범 남극장보고기지 월동연구대장은 "월동연구대의 역할은 기지에 설치된 각종 관측장비와 데이터 수집부터 시작해 식수와 통신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까지 1년 동안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2013년 세종기지 월동연구대에서 활동했던 홍 대장은 "장보고기지는 세종기지보다 기후 조건이나 인프라가 열악해 활동에 제약이 많다"며 "18명의 월동연구대원이 1년 동안 안전사고 없이 즐겁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난 2014년 2월, 대한민국은 남극에 2개 이상의 과학 상주기지를 운영하는 10번째 국가가 됐다. 남극점을 기준으로 1천700㎞, 인천에서는 약 1만2천750㎞ 떨어진 남극 대륙에 '남극장보고과학기지(이하 장보고기지)'가 완공됐다.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극지 연구를 펼친 지도 내년이면 10년째다. 장보고기지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이하 극지연구소)에서 선발한 '월동연구대'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상주하며 기지 운영과 관리, 연구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오는 11일에는 18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11차 월동연구대'가 출국해 10차 월동연구대와 임무 교대를 할 예정이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 따뜻한 '하계' 한발 앞서 준비 선봉대 역할 예정
기후조건 나빠 주변에 獨·伊 불과 2개 나라 임시 기지뿐 '고립감' 커
빙하내부 가스·먼지 과거 특정 시점 대기성분으로 지구 변화 연구 흥미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2

월동연구대의 역할은 연구활동보다는 기지 운영과 연구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극 곳곳을 누비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인데, 북반구가 한겨울일 때 남극은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하계'에 해당한다. 이 기간에 '하계연구대'가 장보고기지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남극 현지를 누빈다.

월동연구대는 이들보다 한발 앞서 장보고기지에 설치된 각종 관측장비와 인프라는 물론이고 식수나 통신 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 시설을 점검하고 연구를 준비하는 '선봉대' 역할을 한다. 선봉대를 1년 동안 지휘하게 될 홍상범 월동연구대장은 월동연구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대장은 "관측장비가 매일 수집하는 각종 기후, 대기 데이터 자료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이 월동연구대의 주요 임무"라며 "자료를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하계연구대의 연구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013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홍 대장이지만, 장보고기지의 환경은 세종기지보다 훨씬 열악하기에 극지 생활에 익숙한 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 조지 섬'은 남극에서도 날씨가 온화한 편에 속하고, 주변에 다른 국가의 과학기지도 밀집해 있어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기 수월하다.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10

그러나 장보고기지는 세종과학기지보다 기후조건이 좋지 않고 주변에 기지도 불과 2개 나라(독일, 이탈리아)밖에 없다. 그나마 이 두 기지도 약 3개월의 하계기간에만 머물렀다 철수하는 임시 기지인 탓에, 사실상 1년 내내 대한민국 대원들만 머무르는 상황이다. 외부와의 단절감이 세종기지와 비교해 훨씬 크다는 게 홍 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장보고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상주기지는 미국 맥머도 기지로 350㎞나 떨어져 있다"며 "세종기지보다 단절된 지역이고, 5~8월에는 24시간 내내 어두운 상태인 '흑야'가 지속돼 심리적으로도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상 조건이 매우 나쁜 날에는 성인 남성이 혼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강풍과 영하 40도에 달하는 극한의 추위가 동반돼 사실상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구활동을 이어가야 하지만, 홍 대장에게는 모두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다. 원래는 대기 화학 분야를 전공하며 대기 환경 분야를 연구하던 그가 극지 연구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홍 대장은 "당시 극지연구소에서 빙하 연구를 하는 박사님들과 함께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그때 국내에도 이런 학문 분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어 "남극의 빙하에는 과거 특정 시점의 대기 상태를 알 수 있는 가스나 먼지 등 각종 대기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빙하를 통해 대기 환경의 변화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8

홍 대장은 15년 전 극지연구소에 처음 입사했을 때와 비교해 많은 부분에서 발전이 이뤄졌다며 한가지 경험담을 꺼냈다. 당시 빙하 연구에서 한발 앞서 있는 국가들의 노하우를 경험하고자 '그린란드 빙하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홍 대장을 비롯한 국내 연구원들은 현지 연구진들의 준비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홍 대장은 "우리 연구진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겨울용 등산복 한 벌과 작업용으로 입을 방한복을 챙겨간 게 전부였는데, 솜털로 속을 채운 옷이라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며 "반면 다른 나라 연구진들의 복장은 매우 잘 갖춰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 경험을 토대로 의복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남동산단의 업체에 방한복 제작을 맡겼지만, 지금은 극지연구소 내에 피복실이 따로 있어 대원들에게 필요한 각종 복장이 철저히 준비돼 있다"고 했다.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7

장보고기지로의 출국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홍 대장은 대원들에게 '대인관계'를 강조했다고 한다. 추운 환경에서 연구활동은 물론 의식주와 안전사고 예방 등 일상생활까지 18명의 대원이 1년 동안 자급자족하려면 무엇보다 단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24시간 내내 어두운 흑야 기간에는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이 시기가 대원들이 고립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때이기에 감정적으로도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35년의 역사를 지닌 세종기지에 비하면 장보고기지는 실내에서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부족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홍 대장의 설명이다.

공감 인터뷰-홍상범 장보고기지 월동대장5

그는 "국내에서 생활할 때는 업무시간에 받는 스트레스를 퇴근 이후나 주말에 풀 수 있지만, 기지에서 생활할 때는 업무공간과 일상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아 쉽지 않다"며 "결국 대원들이 얼굴 붉히지 않고 원만하게 1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대원들에게 교육하면서 마지막까지 강조한 부분도 아침마다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사소한 것부터 잘 지키자고 했다"며 "1년 동안 안전사고 없이 모두가 즐겁게 월동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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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홍상범 대장은?

▲제주대학교 화학과 분석화학 석사(1999)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과학기술과 환경화학 박사(2007)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 연구원(2008~)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연구대장(2023.11~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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