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 스며든 역사의 흔적… 도심 가운데 '포용의 공간'
지난 8일 부산시민공원 하야리아 잔디광장에서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다. 부산시민공원은 미군이 주둔했던 캠프 하야리아 부지를 반환받아 조성했다.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
2010년 한미 간 부지 반환 협상이 타결돼 공원 조성이 추진됐고, 2014년 5월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 표 참조
지난 8일 오전 찾은 부산시민공원 내 하야리아 잔디광장에서는 친구끼리 혹은 가족과 함께 온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하야리아 잔디광장은 축구장 6개 규모(4만㎡)의 드넓은 공간이다.
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주민 김모(69)씨는 "빌딩과 고층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심 한가운데 탁 트인 공간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은 시민에게 큰 자산"이라며 "젊은 시절 캠프 하야리아의 한국인 노무자들을 통해 흘러나온 초콜릿과 항생제를 접하면서 기지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항상 궁금했다"고 말했다.
캠프 하야리아에서 사용한 목조 전신주를 조명으로 활용한 '기억의 기둥'.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
캠프 하야리아에서 사용한 옛 장교클럽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는 '부산시민공원역사관'.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
캠프 하야리아는 미군이 주둔하기 전까지 일본의 서면경마장과 병참기지로 이용됐다. 하야리아라는 명칭도 미군이 동부 플로리다주 하야리아시티에 있는 하야리아 경마장을 닮았다고 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부산을 산업 도시로 조성하면서 경마장, 온천 등 휴양·오락시설을 건립했다. 경마는 당시 일본인이 즐겼던 오락 중 하나였다. 일본은 1930년 신흥 지역이었던 부산 외곽에 서면경마장을 만들고 패망 전까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경마대회를 열었다.
일본이 서면경마장을 만든 것은 단순히 마권 판매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일본은 서면경마장에서 전쟁에 동원하는 말을 훈련하고 군사기지화도 추진했다. 이 같은 계획은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본격화했는데, 일본은 서면경마장의 기능을 폐지하고 일본군 10288기마부대를 창설했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동남아 지역 전투에서 연승하면서 현지 수용소에 연합군 포로들을 가뒀다. 일본은 1942년 한국인 노무자를 포로감시원으로 모집한 뒤 서면경마장 임시군속훈련소에서 훈련해 해외 수용소로 보냈다. 포로감시원은 지원 형식으로 뽑았으나, 지역별 할당 등 징용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은 군사재판에서 한국인 148명에 대해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중 129명이 임시군속훈련소 출신 포로감시원이다. 이들은 일본군 전범으로 투옥 생활을 했지만, 석방된 이후 일본으로부터 어떤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제사회에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피해자 명예 회복이나 배상 등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시는 이 같은 캠프 하야리아의 역사를 부산시민공원 곳곳에 녹여냈다. 인천시가 부평 캠프 마켓에 공원을 조성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이며 인천 시민들도 부산시민공원을 보며 캠프 마켓이 어떠한 공원으로 조성될지 상상해볼 수 있다.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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