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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반환 구역을 가다·(3)]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한 캠프 하야리아

박현주
박현주 기자 phj@kyeongin.com
입력 2022-11-23 20:50 수정 2024-10-17 16:17

자연속 스며든 역사의 흔적… 도심 가운데 '포용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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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부산시민공원 하야리아 잔디광장에서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다. 부산시민공원은 미군이 주둔했던 캠프 하야리아 부지를 반환받아 조성했다.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부산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Hialeah)는 일제강점기 경마장이었다가 해방 후 곧바로 미군이 주둔하면서 80여 년 동안 부산 시민에게 '타자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부산시 부산진구 범전동 일원 52만8천278㎡ 규모의 캠프 하야리아는 미군이 1945년 들어왔으며 2006년 기지를 폐쇄했다.


2010년 한미 간 부지 반환 협상이 타결돼 공원 조성이 추진됐고, 2014년 5월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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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은 도심 심장부에 있다. 평지가 부족한 부산지역에서 부산시민공원처럼 널찍한 땅이 미군기지로 닫혀 있지 않았더라면 오래전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을 것이란 평가가 나올 만큼 좋은 입지다.

부산시민공원 일대는 도로, 철로, 주거지가 꽉 들어찬 구도심이다. 부산시민공원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면적의 사각형 부지인데, 오랜 기간 이방인의 땅으로 남으면서 몰아치는 도시화의 파도를 빗겨갈 수 있었다.

일제 경마장·해방후 미군 주둔지
2014년 4만㎡ 규모 휴식처 재탄생

지난 8일 오전 찾은 부산시민공원 내 하야리아 잔디광장에서는 친구끼리 혹은 가족과 함께 온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하야리아 잔디광장은 축구장 6개 규모(4만㎡)의 드넓은 공간이다.

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주민 김모(69)씨는 "빌딩과 고층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심 한가운데 탁 트인 공간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은 시민에게 큰 자산"이라며 "젊은 시절 캠프 하야리아의 한국인 노무자들을 통해 흘러나온 초콜릿과 항생제를 접하면서 기지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항상 궁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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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하야리아에서 사용한 목조 전신주를 조명으로 활용한 '기억의 기둥'.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부산시민공원은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라는 5개 주제의 숲으로 구성됐다. 부전천 인근 기억의 숲은 일제강점기와 미군 주둔 시기를 나타내는 건물과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성했다.

캠프 하야리아에 있던 건물은 338개였다. 부산시는 이 가운데 장교클럽, 퀀셋 막사, 하사관 숙소, 장교·사령관 관사, 학교, 영화관 입구 등 24개 건물을 보존하고, 나머지 건물은 토양 오염 정화와 공원 조성을 위해 철거했다.

부산시는 장교클럽 건물을 전시 공간인 '부산시민공원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과거 미군 장교들이 식사하거나 연회를 연 사교 공간으로 쓰였다. 원형 건물 천장 중앙에 미8군을 상징하는 마크와 8개 별이 있고 붉은색 선이 뻗어 나가는 문양이 있다.

그러나 이 형상이 욱일기를 연상한다는 시민사회 반발이 크자 현재는 붉은색 선을 다른 색 천으로 가려놨다. 역사관은 일제강점기, 미군 주둔 시기, 하야리아 인근 주민의 삶, 부지 반환과 공원 조성 시기 등 4개 전시실로 꾸몄다.

부산시민공원 역사를 궁금해하는 시민뿐 아니라 주한 미군에 복무했던 외국인과 그 가족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역사관 전시·안내를 담당하는 이재홍씨는 "캠프 하야리아에서 근무했던 미국인 퇴역 군인이 최근 47년 만에 부인, 아들과 함께 방문해 당시 기지에서 사용했던 물품을 기증한 일도 있다"며 "캠프 하야리아 인근 마을 주민의 생활상, 일제강점기 임시군속훈련소(일명 노구치부대)에서 훈련받은 한국인 포로감시원의 삶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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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하야리아에서 사용한 옛 장교클럽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는 '부산시민공원역사관'. 2022.11.8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역사관 인근에는 캠프 하야리아에서 사용된 목조 전신주 46개를 한데 모아 조명으로 활용한 '기억의 기둥'이 있다. 하사관 숙소를 리모델링한 문화예술촌 건물에서는 학생과 작가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미군이 생활했던 건물은 지역 예술인의 활동을 돕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됐다.

반원형의 퀀셋 막사들은 어린이 도서관, 자원봉사 캠프, 수유실, 편의점 등 편의시설로 탈바꿈했다. 자녀와 함께 온 시민들은 어린이 도서관 입구 캐릭터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서 기다렸다. 미군은 한국전쟁 초기 겨울철 천막 기지 대신 내구성이 좋은 퀀셋 막사를 설치했다. 부산시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체험활동, 공연, 전시회, 해설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24개 건물 보존… 역사관 등 운영
하사관 숙소는 '문화예술촌' 활용
목조 전신주 '기억의 기둥' 조형물

캠프 하야리아는 미군이 주둔하기 전까지 일본의 서면경마장과 병참기지로 이용됐다. 하야리아라는 명칭도 미군이 동부 플로리다주 하야리아시티에 있는 하야리아 경마장을 닮았다고 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부산을 산업 도시로 조성하면서 경마장, 온천 등 휴양·오락시설을 건립했다. 경마는 당시 일본인이 즐겼던 오락 중 하나였다. 일본은 1930년 신흥 지역이었던 부산 외곽에 서면경마장을 만들고 패망 전까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경마대회를 열었다.

일본이 서면경마장을 만든 것은 단순히 마권 판매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일본은 서면경마장에서 전쟁에 동원하는 말을 훈련하고 군사기지화도 추진했다. 이 같은 계획은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본격화했는데, 일본은 서면경마장의 기능을 폐지하고 일본군 10288기마부대를 창설했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동남아 지역 전투에서 연승하면서 현지 수용소에 연합군 포로들을 가뒀다. 일본은 1942년 한국인 노무자를 포로감시원으로 모집한 뒤 서면경마장 임시군속훈련소에서 훈련해 해외 수용소로 보냈다. 포로감시원은 지원 형식으로 뽑았으나, 지역별 할당 등 징용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은 군사재판에서 한국인 148명에 대해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중 129명이 임시군속훈련소 출신 포로감시원이다. 이들은 일본군 전범으로 투옥 생활을 했지만, 석방된 이후 일본으로부터 어떤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제사회에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피해자 명예 회복이나 배상 등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시는 이 같은 캠프 하야리아의 역사를 부산시민공원 곳곳에 녹여냈다. 인천시가 부평 캠프 마켓에 공원을 조성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이며 인천 시민들도 부산시민공원을 보며 캠프 마켓이 어떠한 공원으로 조성될지 상상해볼 수 있다.

부산/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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