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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삶 놓은 해머던지기 국대 출신… 사라진 희망에 '죽음으로 외침'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③]

입력 2024-02-26 20:10 수정 2024-03-06 17:40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어려운 가정형편속 꿋꿋이 생활… 여동생과 서로 의지 성장
증액한 전세보증금 소액임차인 기준 벗어나 한푼도 못 받아

1202호의 탄원서

2022년 봄,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1단지 세입자 효선(31·가명)에게도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리고 1년 뒤인 이듬해 봄, 효선은 세상을 등졌다. 늘 밝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같이 버티자고 약속했던 이웃 주민들은 뜻밖의 비보에 그저 허망할 수밖에 없었다.


효선은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출신이다. 고교 시절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효선은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부모와 떨어져 살며 때로는 친척 집을 전전했지만 흔들림 없이 꿈을 향해 나아갔다.

특히 그를 버티게 한 힘은 4살 아래 여동생 지선(가명)이었다.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구김 없이 잘 성장했다. 가장이나 다름없던 효선은 소속팀을 옮기며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효선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하며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전셋집을 찾던 효선은 2019년 9월 행복마을 1단지 1202호에 입주했다. 선수 시절 착실하게 모아둔 7천200만원으로 보증금을 냈다. 효선은 이사 오고 2년 뒤, 20년 가까이 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인천에는 연고도, 지인도 없었다. 효선은 은퇴 후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외로운 타지 생활을 시작한 효선의 유일한 말동무는 역시나 동생이었다. 여러모로 쪼들려 힘들 법도 한데 지선과 통화할 때면 언제나 밝은 목소리였다. 

나, 다른 일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지선은 어느 날 지나가는 듯한 언니의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언니였기 때문이다.



효선의 전셋집 보증금은 재계약 당시 9천만원으로 올랐다. 아르바이트 등 하는 일은 벌이가 변변치 않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22년 3월부터 행복마을 1단지 집들이 속속 경매에 넘어갔다. 효선의 전셋집도 그랬다. 지선은 그해 연말이 돼서야 언니가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 괜찮아?
응, 언니는 괜찮아

언니는 금방 해결될 거라며 걱정하는 동생을 다독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단지 주민들은 피 같은 전세보증금을 되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도무지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밝은 효선의 모습 뒤엔 '최우선변제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효선 같은 소액임차인은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보증금 일부를 먼저 돌려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법을 만들어놨다.

하지만 그 희망조차 산산조각 났다. 효선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전세 계약을 연장하면서 한 차례 증액한 전세보증금이 소액임차인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게 이유였다. 생활고를 겪던 효선은 그렇게 무너졌다.

2023년 4월17일 여느 때와 같이 동생과 통화를 마친 효선은 '죽음으로 탄원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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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7일 전세사기로 신변을 비관해 세상을 등진 피해자가 거주하던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경인일보DB

/기획취재팀


→4편에서 계속 (허점 파고든 '범죄'… 2700여개의 '시한폭탄')


※기획취재팀=변민철·백효은 기자(인천본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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