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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생이별 당한 세가족, 누가 그들의 '일상'을 앗아갔나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②]

입력 2024-02-26 20:11 수정 2024-03-06 17:40

[미추홀 전세사기 기록: '행복'계약서에 속다] 


결혼전 모았던 전재산 8500만원, 돌려받지 못해
아빠 투잡·엄마 알바… 함께살 '희망' 놓지않아
 

'아빠 집' 가는날
엄마, 우리는 왜 아빠랑 따로 살아요?

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1단지 전셋집들이 속속 경매에 부쳐진 2023년 2월. 502호에 사는 성찬(38)·서형(34·이상 가명) 부부는 1층에 주차된 이삿짐 트럭에 분주히 짐을 옮기고 있었다. 부부에게 6살 아들 혜수(가명)는 해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성찬은 아무런 말 없이 혜수의 겉옷 단추를 잠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부부가 함께 사용하던 침대도, 아내 화장대도, 혜수가 앉아 그림을 그리던 작은 책상도, 아내와 아이의 옷가지도 모두 이삿짐 차에 실렸다. 거실엔 성찬의 짐만 외롭게 남겨졌다. 이삿짐 트럭은 서형의 친정인 충남 금산으로 출발했다. 소풍을 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은듯 혜수는 콧노래를 불렀다.

차로 3시간 달려 금산에 도착한 부부는 부지런히 짐을 풀었다.

혜수야 엄마랑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열 밤만 자면 아빠 또 올게

성찬이 혜수를 꼭 껴안았다.


성찬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왈칵 눈물을 쏟는 아들을 두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집주인에게 돌려받지 못한 8천500만원은 부부가 결혼 전 모은 전 재산이었다.



곧 유치원에 들어갈 혜수를 위해 부부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성찬은 빠듯한 생활비와 이사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잡'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8시부터 지게차를 몰다 오후 5시30분에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 그에게 허락된 수면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남들은 퇴근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저녁 8시30분이면 옷을 갈아입고 두 번째 출근을 했다. 성찬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동이 틀 때까지 연안부두에서 수산물을 옮겼다. 매월 나오는 관리비 10만원이 아까워 성찬은 야간작업장에서 제공하는 숙소로 들어가는 걸 고민했다.

하지만 어린 혜수가 마음에 걸렸다. 아빠를 보러 인천에 올 아들이 머물 데는 있어야 했다. 그렇게 성찬은 행복마을에 홀로 남았다.

금산에서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혜수는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아빠 집'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일에 매진한 성찬도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서형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는 남편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서형에게 눈치 없이 "왜 애 아빠와 따로 사냐"는 이들의 물음에 그는 "남편이 일 때문에 멀리 떠났다"고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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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행복마을' 1단지를 휩쓴 전세사기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 성찬(가명)씨는 설 명절 연휴를 맞아 한 달 만에 충남 금산에서 올라온 아들 혜수(가명)를 힘껏 껴안았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24년 설 명절을 맞아 모처럼 가족이 다시 모였다. 꼭 한 달 만이었다. 한기가 느껴지던 거실도 온기가 돌았다. 성찬은 며칠 전 7살 생일을 맞은 아들의 장난감 선물을 한가득 준비했다. 혜수가 신이 나서 거실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 가족 다시 같이 살 때까지 조금만 더 힘내자.

혜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부부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기획취재팀

→3편에서 계속 (삶 놓은 해머던지기 국대 출신… 사라진 희망에 '죽음으로 외침')

※기획취재팀=변민철·백효은 기자(인천본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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