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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천하는 인천책·(5)] 양진채 소설가-박민규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입력 2022-08-17 19:02 수정 2022-12-08 14:57

세상 잣대 비틀어… 낙오자에게 유쾌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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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303쪽. 2018년 8월12일 출간
요즘 인천이 들썩인다. 야구의 '야'도 모르는 나조차도 추신수, 김광현 선수 이름을 안다. 그만큼 인천 야구가 뜨고 있다. 뜬다는 건 이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야구팬들의 가슴은 두근거리다 못해 싱글벙글, 아니 벌렁벌렁이다. 술자리에서 야구 얘기가 나오는 순간, 모두 감독이 돼 경기를 분석하고 승부를 예측한다.

그날 술집 매상은 그야말로 광 파는 날이다. 역시 스포츠 경기는 이겨야 맛이다. 경기니까. 애초에 경기는 어느 팀이 잘하나, 혹은 누가 잘하나 승부를 내는 시합이니까.

야구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인천은 한국 야구의 발상지가 인천이었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일제 치하에서 인천 청년으로 구성된 한용단(漢勇團)이 일본 야구팀을 상대로 싸우던 위용을, 한용단의 야구대회가 있다는 소문만 나면 만사 제쳐놓고 야구경기를 보러 모여들던 인천시민의 드높은 기상을 얘기한다. 부침 많던 인천 프로야구단의 역사는 질풍노도의 감정을 내려놓고 술안주처럼, 추억처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인천 첫 프로야구단 팬클럽 소재
열렬응원에도… 최저승률·18연패
쓰라린 상처 안겼지만 '전설' 기억
추신수·김광현 들썩이는 분위기
자존심 세워 韓 야구 발상지 자랑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박민규 소설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제목에서 벌써 감 잡았을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인천 최초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삼미 슈퍼스타즈를 눈물겹게 응원하던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못했던 팬클럽, 그것도 마지막 팬클럽이라니.



12·12 군사 반란, 5·17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을 거쳐 집권한 제5공화국 정부가 국민의 눈을 돌리려고 3S 정책을 폈다.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을 주도했고, 프로야구 역시 그 일환이었다. 의도대로 대단한 붐이 일었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로야구단은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하기도 했다.

소설은 야구단이 창단되던 1982년, 자부심을 품고 기꺼이 경쟁률을 뚫고 팬클럽의 회원이 되었던 막 중학생이 된 나와 친구, 인천사람들의 '야구경기', 아니 인생을 얘기한 소설이다. 여기까지 읽고 미루어 짐작하지 말아달라.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찌 우리 잊으랴, 전설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출범한 6개 구단 중 처음으로 인천에 터를 잡고 출범한 팀이었다. 천하무적 슈퍼맨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엠블럼은 지구를 구하던 영웅 슈퍼맨처럼 인천을 단번에 전설의 야구도시로 만들어줄 줄 알았다.

웬걸. 첫해부터 프로야구 사상 최저 승률 0.188을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나도 감사용이나 장명부를 알 정도로 열렬한 응원을 받았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끝내 1985년에는 18연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야 말았다. 인천시민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쓰린 상처를 안긴 것이다.

그런데 소설, 그것도 야구단 얘기가 아닌 야구단을 응원했던 팬클럽 얘기라니. 책을 펼쳐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저건 프로야구가 아니라 동네야구입니다"라는 모멸감을 안긴 해설자의 음성을 똑똑히 기억하니까.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속단하지 말아달라. 이 소설, 재밌다. 소설을 끌고 가는 문장의 힘이 엄청나 울고 웃다 보면 막힌 체증이 다 내려간다.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낙오자들에게 띄우는 조금은 슬픈, 그러나 유쾌한 연가'라는 책 띠지의 선전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베스트셀러이며 2020년 말에는 표지를 완전히 바꾼 개정판을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찾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소설 역시 '경기'를 승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세상의 잣대를 멋지게 비트는 유쾌한 반어법을 쓰고 있다. 

야구 경기장에서 목청껏 부르는 김트리오의 '연안부두'처럼 떠나는 배를 노래하는데 괜히 신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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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설을 읽으며 지난날의 오명쯤은 마지막 무더위와 함께 날려보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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