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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천하는 인천책·(9)] 양진채 소설가-이원규의 '조봉암 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

입력 2022-10-12 19:26 수정 2022-12-08 14:57

모두가 행복한 세상, 죽산이 뿌린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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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조봉암 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 지음. 한길사 펴냄. 632쪽. 2013년 3월 1일 출간
이원규 소설가는 인천의 대표적 원로작가이다. 인천 출신이면서 인천을 무대로 분단 문제에 천착한 작품으로 문단에 독보적 입지를 세웠는데, 인천이 북한과 접경지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천이라는 장소성과 분단이라는 주제가 얼마큼 밀접한지 짐작이 가리라.

그의 작품은 인천과 서해를 배경으로 분단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장편소설 '황해'는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는 서준혁이란 인물이 민중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불의에 앞장서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분단의 아픔을 그린 단편소설 '포구의 황혼'에서 바다 한가운데서 이북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려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 절규하면서도 끝내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던 아들의 모습은 몇 번을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게다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치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 작가가 십여 년 전부터 평전을 쓰기 시작했다.

이원규 소설가는 방대한 자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소설적 요소를 더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평전을 써서 평전작가로서도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조봉암 평전' 역시 그런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천에 대한 애정이 많은 작가가 인천 강화 출신의, 죽산 조봉암 선생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깊은 애정을 가지고 다룬 작품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강화 출신의 조봉암 일대기 다뤄
방대한 자료·고증에 소설적 요소
300여개 주석·100여장 귀한 사진


조봉암 선생이 한때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법원은 그가 주장한 '평화통일'에 간첩죄를 씌워 사형을 언도했다. 이름도 같이 땅속 깊이 묻혔다. 그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나온 건 2011년 초. 가족, 종친회, 인천 시민사회 등의 노력으로 대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후였다. 판결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조봉암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국회 부의장,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우리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 판결로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 피고인 조봉암. 원심 판결과 제1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각 파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양이섭 관련 간첩의 죄는 무죄, 제1심 판결 중 진보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기각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죽산 조봉암 선생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조봉암 선생의 동상 건립을 추진 중이며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죽산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를 열었고, OBS에서는 특집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인천에서 먼저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이전에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라는 부제를 달고 '조봉암 평전'이 나왔다.

이 평전이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300여 개 주석과 200여 개 참고문헌이 수록되어 읽기도 전에 기가 질릴지 모르지만 100여 장의 귀한 사진, 소설적으로 가미된 조봉암 선생의 인간적 삶 등은 이 책의 두께를 충분히 감당하고 남을 만큼 속도감 있게 읽힌다.

사형 판결, 2011년 재심서 무죄로
인천, 특집방송 등 명예회복 노력


죽산 조봉암 선생은 '책임정치, 수탈 없는 경제 민주화,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그리고 '우리가 못한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책 604쪽)라고 했다.

그가 골고루 잘사는 날을 위해 씨를 뿌린 '책임정치', '수탈 없는 경제 민주화', '평화통일'의 염원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싹은 트고 있는 것인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인가.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다만 한 걸음, 다 같이 어깨를 걸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나는 그가 민중 앞에서 연설하는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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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사상가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소망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씨앗이라는 건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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